금융당국이 가계부채의 내용과 질을 따져 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잇달아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 등으로 전체 대출 증가세가 한풀 꺾인 만큼 다중채무자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가계대출 부실 위험도를 미시적으로 분석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퍼주기식으로 서민금융 지원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실효성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도 깔려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올 들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대출 구조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다중채무자 증가, 자영업자 대출 부실 가능성 등 전반적인 질은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미시적인 심층분석을 통해 세밀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신용평가사 등과 함께 ‘가계부채 미시분석 작업반’을 구성해 가동하고 있다. 작업반은 12개 분석과제 가운데 △소득 및 연령대별 가계대출 상환능력 평가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위험 평가 △다중채무자 대출의 부실위험 평가 등 3개 과제에 대한 분석을 거의 마무리했으며 이달 중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또 금리, 부동산 가격 등 거시경제 변수의 변화가 가계의 채무 상환 부담이나 가계부채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반기엔 가계부채 위험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인프라 개선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부실 위험이 큰 다중채무자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우대 상품으로 기존 대출 전환, 일부 채무 재조정, 프리워크아웃 등 신용회복프로그램 확대 등과 같은 대책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미시분석을 통해 다중채무자 가운데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을 분류하게 될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금리 부담을 줄여주는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 부실 우려에 대해서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만큼 정부가 대출을 조인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대책은 내놓기 어렵다”며 “금융회사별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가계대출+판매신용)은 911조400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53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대출이 전 분기에 비해 6400억원 늘어났지만 판매신용(가계의 외상구매)이 1조1700억원 감소한 때문이다. 가계신용 잔액이 줄어든 것은 2009년 1분기 이후 3년 만이다.

고 국장은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는 그동안의 관리 노력과 계절적 특성, 경기 둔화 우려 및 주택시장 부진 등에 따른 수요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