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스마트TV에 탑재된 ‘스마트 허브’ 플랫폼을 케이블TV 방송업체들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케이블TV 시청자들은 ‘셋톱박스’만 설치해도 삼성전자 스마트TV 콘텐츠를 동일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이 같은 전략은 스마트TV 판매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케이블TV 시청자들은 별도로 스마트TV를 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스마트TV라는 하드웨어보다는 내용물(소프트웨어)인 ‘스마트 허브’ 플랫폼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삼성전자의 사업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인터넷망 사업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망중립성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올해 4분기부터 서비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담당 사장(사진)은 1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2 디지털 케이블TV쇼’ 기조연설에서 “케이블TV 셋톱박스에 삼성 스마트TV 플랫폼을 적용하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올해 4분기께 소비자들에게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날인 지난달 31일에는 변동식 CJ헬로비전 사장이 기자와 만나 “스마트TV 사업 협력을 위해 삼성전자와 다각도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스마트TV는 TV 안에 인터넷과 콘텐츠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 허브’ 플랫폼이 내장돼 있다. 반면 케이블TV 방송업체들이 가정에 제공하는 ‘스마트 셋톱박스’는 일반 TV에 연결하는 외부 장치다. 케이블TV에 스마트 셋톱박스를 설치했다면 굳이 스마트TV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케이블TV 가입자가 1500만명에 달하는 상황은 삼성전자의 스마트TV 판매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플랫폼 늘리는 것이 더 중요

삼성전자가 케이블TV 방송업체에 스마트TV 플랫폼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마트TV 판매량이 줄더라도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스마트 허브’ 플랫폼 사용자가 늘어나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사업자들이 스마트TV 자체보다는 소프트웨어인 플랫폼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삼성전자가 사업 전략을 바꾼 이유 중 하나다. 윤 사장은 “페이스북이나 애플 등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자들은 고객 수 3000만명을 기점으로 매출이 급격히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며 “스마트TV 역시 이 숫자를 넘기면 플랫폼 사업자들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스마트TV에 케이블TV 또는 IPTV의 셋톱박스를 내장한 제품도 내놓을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통신사업을 하고 있는 ‘엘리온’과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도 삼성전자의 스마트TV로 IP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기도 했다.

◆망 중립성 논란도 해결

시청자들이 케이블TV망을 통해 스마트TV를 보게 되면 망중립성 논란도 피해갈 수 있다. KT는 지난 2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와 연결된 인터넷 회선을 차단했다가 4일 만에 해제한 적이 있다. 인터넷 트래픽을 과도하게 발생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케이블TV는 유선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인터넷망과는 다른 케이블을 쓰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변 사장은 “케이블망은 처음부터 영상 전송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유선 사업자들보다 망 부하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또 KT의 IPTV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형태로 삼성전자 스마트TV에 탑재하는 방안을 KT 측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삼성전자 스마트TV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케이블 업체, 유선사업자 모두와 협력해 소비자들이 스마트TV를 접할 수 있는 경로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제주=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