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은 이제 국민 머릿속에 관념적으로만 남아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가슴으로 느끼는, 일상생활의 한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어요.”

제57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은 하루 종일 밀려드는 참배객들로 붐볐다. 현충원에서 만난 정진태 원장(59·사진)은 “지난 주말 8만여명이 다녀간 데 이어 평일인 어제도 3만여명이 방문했으며 오늘도 3만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충원이 유가족 등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호국영령을 기리는 보훈의 의미도 더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현충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 해 방문객이 200만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점차 줄어 정 원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엔 방문객이 98만명으로 감소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현충원이 경건하고 엄숙한 곳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후손들에게 호국영령을 기리는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2009년 취임과 함께 ‘대중과 함께하는 현충원’을 모토로 내걸고 현충원의 폐쇄성을 깨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현충원 담장부터 바꿨다. “현충원을 둘러싼 콘크리트 담장이 5.1㎞였습니다. 이걸 투시형 담장으로 바꿔 시민들이 어느 곳에서나 현충원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현충원 안팎으로 내부에 4㎞, 담장을 따라 도는 5.1㎞의 산책길도 만들어 수목원 분위기를 조성했다.

2006년부터 시작한 납골당(충혼당) 사업도 현충원을 ‘경건함과 안식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2만1000위를 모실 수 있는 충혼당에 5000위 정도가 안치돼 있다”며 “수익사업은 아니고 새 장묘문화를 확산시킨다는 뜻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개정될 것으로 보이는 ‘국립묘지안장에 관한 법률’을 통해 시작할 수목장 사업도 정 원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다. “서울현충원 터가 143만㎡(43만평)인데 그 가운데 묘역이 33만㎡이고 나머지가 산지예요. 이 중에 시민이 접근하기 쉬운 15만㎡ 정도에 수목장 터를 조성해 시민 공간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그는 “덕분에 내방객이 매년 꾸준히 늘어 2009년 200만명을 회복한 데 이어 올해는 3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참배객이 연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전직 대통령 세 분의 묘역인데, 박정희 대통령 묘역이 가장 많고 김대중, 이승만 대통령 묘역 순”이라며 “각각 경제발전, 민주화, 건국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35년째 공직에 몸담고 있는 그는 1978년 7급 공채로 시작해 국방부 방산 분야에서만 23년을 보냈다. 2010년 홍익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방위산업학 개론’이란 책도 펴냈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