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금융권 묶어 공동감독ㆍ지원…'은행동맹' 구상 해법될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해법으로 ‘은행동맹(banking union)’ 구축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 주도로 유로존 전체 민간은행을 일괄 감독하고 공동으로 예금 보장과 유동성 지원을 시행하는 시스템이 추진되고 있는 것. 하지만 유로존의 ‘물주’ 독일이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볼 수 있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면 시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은 6일 유로존 역내 민간은행에 대한 감독 강화와 은행 간 상호 예금 보장과 공동 구제기금 조성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은행동맹 구상을 발표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 재정위기국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로존 금융권 전체를 묶어 상호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각국 정부 돈을 모아 만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해 부실 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에 비해 국민 세금을 덜 쓰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미셸 바르니에 EU 시장·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파산 위기에 처한 부실 은행 구제에 각국 납세자들의 돈이 쓰이는 것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행동맹 구상은 지난주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유로존 은행들이 단일 금융감독기구의 감시를 받으면서 EFSF 등의 자금을 직접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 뒤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오는 28~29일 EU 정상회의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은행동맹은 유로존 재정 통합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블룸버그통신)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은행동맹 성공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다. 바호주 위원장은 지난 3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 은행동맹에 반대해온 독일을 설득했지만 반응이 신통찮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은행동맹 구상을) 중기 목표로 검토해볼 수 있다”며 재정 통합을 이룬 다음에 할 ‘미래의 일’로 미뤘다.

G7(주요 7개국)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라”는 요구가 나오는 등 독일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독일이 사실상 은행동맹 구상에 반대했다는 분석이다. 독일은행연합회도 “독일 은행들이 남유럽 은행들의 부실 부담을 떠안을 만큼 튼튼한지 자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은행동맹은 빨라야 2014년에나 가능할 전망이고, 출범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한델스블라트)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의 니콜라스 베론 연구위원은 “뒤늦게 나온 미약한 조치”라며 “당장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귀중품(장기 대책)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연 1.0%로 동결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취임 직후인 지난해 11월과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린 이후 올 들어선 6개월 연속 금리를 제자리에 묶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ECB의 금리동결 조치로 유럽 정치권에 ‘ECB에 기대지 말고 직접 재정위기에 대처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오는 17일 그리스 총선 결과와 스페인의 재정위기 심화 정도에 따라 ECB가 내달에는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연합통계청(유로스태트)도 이날 올 1분기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0% 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로는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 성장(-0.3%)을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