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모두 안다면서 어리석어 답 못 하고/일천 사람 이름 알아 비방이 따라오네/(…)/예로부터 백안시는 친지에게 달린 것을/(…)/우습구나 내 인생 간데없는 바보로다”(저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해놓고 막상 제 처지 하나 감당하지 못했다/명성은 늘 비방을 달고 다녔네/가깝던 벗들이 내게 먼저 등을 돌린 것이 가장 뼈아프다/나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였구나. 바보 같은 놈!)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며 응어리진 독백을 속사포처럼 쏟아낸 사람. 이 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조선후기를 빛낸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22세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한 다산은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의 요직인 우부승지까지 맡았지만 그의 운명은 신유박해(1801년)로 곤두박질친다. 그해 3월 경상북도 장기에서 유배생활이 시작돼 같은해 11월 전라남도 강진으로 장소만 옮겨 18년간 속박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조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였기에 유배생활이 더 고단했을지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18번 바뀐 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한밤중에 잠깨어》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지은 한시 중에 자기 독백이 들어 있는 작품을 엄선해 모은 한시집이다. 그간 다산의 삶과 학문적 업적을 좇아온 정민 한양대 교수가 다산의 시점에서 일기 쓰듯 풀이를 덧붙였다. 특히 올해는 다산 선생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라 한시를 통해 듣는 다산의 목소리가 더욱 의미 깊다.

“취해 북산 올라가 통곡을 하니/통곡 소리 하늘까지 도달하누나/옆 사람 내 속뜻도 알지 못한 채/나더러 신세 궁해 슬퍼한다고”

다산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통곡을 하며 이 나라, 이 백성의 장래를 슬퍼하기도 하고, “(…)남은 목숨 그믈에 걸린 고기 다름없다/천년 뒤에 어느 누가 이 나를 알아주리/마음 세움 좋았으나 재주가 부족했네”하며 자신의 깜냥을 탓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 어느 것 하나 정붙일 곳 없던 그는 절망과 좌절을 숨기지도 거짓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다산의 위대함은 절망을 뛰어넘는 정신의 승리에 있다. 그는 “낡은 책 일천 권을 장차 어디 놓아둘까/구덩이도 평지 같음 바로 네 공인 것을(천 권의 서책이 내 곁에 있다. 나는 지금 구덩이에 빠졌다. 하지만 평지려니 하고 지낸다. 이런 평상심이 가능한 것은 오직 독서의 힘이다. 책을 읽으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하루하루 다잡는다)”라고 말한다.

자신 때문에 모진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보인다. 아낙네들이 시냇가에서 방망이로 빨래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생각하고, 막내 아들이 보낸 조그마한 밤톨을 보고 마음이 짠하다고 고백한다. 또 아비가 혹여 병마와 싸울까봐 긴 시간 의서를 베껴 보낸 아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