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성남산업단지. 우림라이온스밸리빌딩에 아프로테크가 있다. 이 회사는 종업원 8명의 작은 기업이다. 이 회사에 들어서면 전자현미경, 플라즈마박막코팅장치, 이온빔코팅장치, 플라즈마전해산화장치 등 고가 장비들이 놓여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하는 것은 표면처리 관련 프로젝트들로 대부분 국내 최초로 상업화하는 것이다. 굵직한 것만 3건에 이른다. 어떻게 이 작은 회사가 이런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일까.


아프로테크에 들어서자 건너편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남공단이라고 하지만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데다 사무실이 6층이어서 전망이 좋다. 김형태 사장(44)은 기자에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직원에게 준비시켰다.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다가서자 직육면체 안에 담긴 물 속에서 아주 작은 불빛이 빨간 색을 내며 수없이 명멸하는 것이 보였다. 마치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현재 개발 중인 ‘플라즈마 전해 산화법에 의한 산화피막’ 공정이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 공정은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사진은 곤란하다”고 말렸다.

전기자동차나 고속전철 등에 쓰이는 부품 중 ‘알루미늄 전해 커패시터’라는 게 있다. 전기를 가둬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부품이다. 시동을 걸 때와 전력 변환에 주로 사용된다. 이 부품은 알루미늄박과 산화피막 전해액함침지 절연지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핵심부인 산화피막은 양극산화 공정을 통해 제작된다. 그런데 이 회사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플라즈마 전해산화법’에 의한 산화피막이다.

김 사장은 “기존 방식인 양극산화에 의한 산화피막은 많은 구멍층이 있어 내구성 등에 한계가 있다”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게 바로 플라즈마 전해산화법에 의한 산화피막”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말을 목표로 개발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게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전기자동차나 고속전철의 전기계통 부품 신뢰성이 더 높아지고 수명 보증기간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휴대폰 액정패널 등에 많이 쓰이는 플렉시블 터치 패널용 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의 투명전극에는 인듐이 주로 사용된다. 문제는 인듐이 희유금속이어서 가격이 아주 비싸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런 희유금속은 자원전쟁의 대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를 희유금속이 아닌 ‘알루미늄·아연산화물(AZO)’로 대체하는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아연은 인듐 가격의 100분의 1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김 사장은 “이를 위해 저온증착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LCD나 LED의 화면 반사를 막기 위해 ‘저반사·고투과 나노박막’도 개발 중이다. 그는 “이는 LCD나 LED의 화면에도 쓸 수 있다”며 “만약 태양전지에 쓰일 경우 0.7~1% 정도의 효율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이런 제품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소수 정예 인력과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성균관대 공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의 전공은 신소재공학이다. 아프로테크는 공학박사 2명, 공학석사 2명을 포함한 자체 인력 8명을 두고 있다. 이들 모두 연구개발 인력이다. 아울러 네트워크를 통해 약 60명에 이르는 외부 전문가 그룹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학교수 및 각종 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인력도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이를 상업화하고 있다.

김 사장은 박사 학위 취득 후 곧바로 창업에 나섰다. 월급쟁이나 교수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모교인 성균관대 창업보육센터에서 2001년 아프로R&D를 창업해 시험 전문업체를 출범시켰다. 초기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일감이 없었고 무엇보다 시험장비를 도입하는 데 무척 많은 돈이 들었다. 시험장비는 대당 수억원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필수장비인 주사전자현미경은 3억5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부인의 격려는 큰 힘이 됐다. 주사전자현미경을 사려고 전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담보잡히려고 어렵게 말을 꺼내자 그의 부인은 “망하면 제주도 가서 풀빵장사 하면 되지 뭘 걱정하느냐”며 흔쾌히 승락해줬다.

그 뒤 내구성 테스트장비 환경시험장비 반복진동·낙하시험장비 등 수십종을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2007년에는 아프로테크를 출범시켰다. 테스트 전문업체로 기업 생산제품에 대한 진단과 고장원인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아프로R&D와는 달리 아프로테크는 연구개발 전문업체이기 때문에 서로 성격이 달랐다.

아프로테크는 주로 남들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표면처리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해 기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아예 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뒤 넘겨주는 특이한 분야다. 대부분의 기업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데 비해 이 회사는 기술만 개발하고 이를 타사에 넘겨주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도 새로운 분야거니와 도전하는 기술 역시 블루오션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김 사장은 “올 하반기부터는 그래핀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로 이뤄져 있으며 원자 1개의 두께로 이뤄진 얇은 막이다. 상온에서 단위면적당 구리보다 100배 이상 많은 전류가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전자를 100배 이상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며 최고의 열전도성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열전도성이 높아 ‘꿈의 나노물질’이라 불린다. 특히 탄성이 뛰어나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 특징이 있다.

김 사장은 “재료공학의 경우 개발할 내용이 무궁무진하고 전체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커서 매력적인 분야”라며 “앞으로도 도전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소수의 인원이지만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을 강화한다면 이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