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왜 그렇게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나.”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려면 어학 해외연수 등 스펙이 필요한데 그걸 만들려다 보니….”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출신인 D대학의 최 교수와 3학년까지 1년 걸러 1년씩 휴학했던 제자 이씨의 대화는 이어졌다. “진로는 잡았나”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행정정책론을 강의하는 최 교수가 최근 오후 수업을 마친 뒤 20여명의 수강생 중 6명의 제자들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긴 학생들은 꽉 막힌 현실을 호소했다. “(비싼 등록금을 받는 로스쿨을 거쳐야 하므로) 판·검사도 돈 없으면 시도조차 힘들게 됐잖아요. 외교관이나 대기업 채용도 면접이 당락을 좌우하니 연줄이 개입할 여지는 더 커졌고요….”

계층 고착화로 사회활력 저하

최 교수는 그 순간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없진 않았지만, 그들의 절박감은 설득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는 것. 상당수의 학생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생의 이런 불만이 젊은 시절 흔히 있는 사회 비판 성향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 정도라면 휴학을 밥 먹듯이 하진 않을 겁니다.” 최 교수는 잘라 말했다. 사회계층 상승을 가능케 했던 다양한 통로들이 서민·중산층에 바늘구멍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그런 측면이 강하다. 서민·중산층 젊은이의 ‘점프 업’(jump-up) 루트였던 고시 제도는 사라지는 추세다. 올해 1400여명의 변호사를 낸 로스쿨 제도가 그 중 하나다. 로스쿨이 5년 뒤 사법시험을 완전히 대체하면 ‘가난한’ 젊은이의 법조계 진입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연간 학비만 2000만원에 이르는 로스쿨을 3년 더 다녀야 변호사 시험을 칠 기회를 갖게 되어서다. 가난 때문에 상업고등학교에 갔지만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가 됐고 대통령까지 오른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자수성가 인물은 태어나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의미다.

‘용 나는 개천’ 다시 만들어야

내년엔 외무고시도 없어진다. ‘국립외교원 후보자 선발방식’으로 바뀐다. 금융 등 분야별 전문가와 어학 능통자에게 문호가 넓어졌다. 국내외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가거나 해외 연수 등을 위해선 집안의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불가피한 현실을 감안할 때 중산층 ‘2030’에겐 또다른 박탈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특혜 채용도 많은 젊은이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올초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밝혀진, ‘변경된 전형기준을 특정인에게만 알려주는’ 등의 지방공기업 행태는 저변까지 번진 불공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물론 고시제도 폐지는 ‘고시 낭인’(고시준비에만 매달리는 수험생) 문제 해소, 공무원 경쟁력 제고 등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이 범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제도나 관행의 변화를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질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가선 곤란하다. ‘2030’ 세대를 공동체 내 소외그룹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어서다.

‘개천에 용이 사라졌다’는 말을 쉽게 듣게 된다. 서민층이 사회 상층부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음을 빗댄 말이다. 이는 사회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계층 상승기회를 엿볼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놔야 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상징어는 ‘다이내믹’이 아니던가.

김철수 오피니언부장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