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반까지 조선 땅에는 호랑이가 적잖이 출몰했던 것 같다.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호랑이를 사로잡는 방법’까지 나온다. 다름 아닌 ‘끈끈이’로 덫을 놔 호랑이를 잡는다는 발상이 신기하다.

“끈끈이를 땅에 깔거나 길가 여기저기에 펼쳐놓으면, 호랑이가 왔다가 머리가 닿아 끈끈이가 묻었음을 알게 된다. 발톱으로 후벼도 끈끈이가 떨어지지 않으면 땅에 앉는다. 그러면 잠깐 사이에 온몸이 모두 끈끈이 범벅이 되어 성내어 울부짖기도 하고 팔짝팔짝 뛰기도 하다가 죽는다.” (제7지 ‘전어지’ 중)

풍석이 30여년에 걸쳐 지은 《임원경제지》는 농촌생활과 관련한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조선 최대 실용 백과사전으로 꼽힌다. 농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가득하다. 논에 물을 댈 때 사용하는 ‘자승차(自升車)’ 같은 기구부터 베개를 만드는 방법, 《동의보감》보다 더 많은 분량의 의학 지식, 밭두렁에 씨를 심어 수확을 늘리는 법, 다양한 술과 음식을 만드는 법 등 농축수산업, 원예, 요리, 기상, 지리, 의약, 건축, 음악, 서화 분야의 지식이 망라돼 있다. 총 2만8000여가지의 문물 지식을 16분야로 나눠 113권 252만여자에 담고 있다.

이 《임원경제지》가 2014년 3월 전질 55권으로 완역, 출판된다. 초벌 번역은 완료됐으며, 여러 다른 필사본이나 판본과 대조해 오류를 바로잡는 교감(校勘)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이 책의 전체적인 모습을 해설하는 개관서 《임원경제지-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이 나왔다. 저자 풍석 선생의 삶과 사상, 각 지(志)에 대한 해설, 지의 서문, 세부 목차를 담고 있다. 《임원경제지》의 학문적 성격과 실학사적 의의, 구체적인 내용 범위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될 전망이다.

2003년부터 42명의 소장학자를 이끌고 번역작업을 해온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43)은 “풍석 선생은 관념에 치우친 조선 유학자의 학문적 태도를 비판하고 사람살이의 기본인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풀기 위해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며 “113권 2만8000여가지에 이르는 문물 지식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실용서이자 최대의 전통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또 “《임원경제지》가 완역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면 전통문화산업과 한류콘텐츠는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며 “전통 농사법에 기초한 친환경 농산물 생산, 풍부한 한의학 자료를 기반으로 한 천연약초 한방산업 등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