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가 은행권 자본확충 등을 위해 100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에 대해 시장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 등 아시아 증시가 상승세를 보였지만 유럽 증시는 장초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뉴욕 증시는 장중 하락세로 돌아섰다.

“시간벌기에 불과하다”(파이낸셜타임스)거나 “스페인 정부에 대한 구제금융도 불가피할 것”(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적지 않다. 유럽위기는 오는 17일 치러지는 그리스 총선 결과에 따라 해결국면에 접어들지, 악화일로를 걸을지 결론이 날 전망이다.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 이후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4대 관전 포인트를 살펴본다.


◆‘보이는 위협’ 그리스 총선

스페인 정부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남유럽 은행권에 대한 불안이 다소 진정되면서 그리스 총선이 유럽위기 최대 변수로 다시 떠올랐다. 선거 결과에 따라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퇴출될지, 긴축정책을 계속 수용할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장 스페인에 추가 긴축 의무가 없자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했던 그리스 내 급진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는 “그리스도 스페인처럼 긴축의무가 포함되지 않은 구제금융 협상을 맺을 수 있다”며 지지세 확산에 나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시리자는 제1당 등극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극좌파의 대두에 사회당과 민주좌파당 등 온건좌파 성향 정당들도 구제금융 조건을 재검토하기 위해 총선 이후 거국내각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비즈니스위크는 “그리스 총선 결과에 따라 3년간 지속된 유럽 재정위기가 통제의 길로 갈지,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평했다.

◆가혹한 제재 정말로 피했나

스페인이 구제금융은 받지만 재정긴축을 비롯한 혹독한 개혁조치를 면제받은 데 대한 외부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구제금융 협상을 ‘승리(victory)’라고 표현했지만 스페인 국내에선 루이스 데 귄도스 경제장관을 구제금융 결정 발표장에 대신 내세운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외부의 견제도 본격화되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도 “스페인의 경제개혁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구제금융 지원조건 강화를 제의했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기존 구제금융 신청국들도 스페인에 대한 특혜대우를 따질 분위기다.

◆다음은 이탈리아?

유로존 4대 경제대국 스페인마저 구제금융 대상이 되자 이번엔 이탈리아로 위기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정책연구센터(CEPS)의 다니엘 그로스 소장은 “EU의 방화벽 규모를 고려할 때 스페인을 구제하면 이탈리아를 도울 여력이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AFP통신은 “올해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이 1.7%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기침체가 현실이 되고 있다”며 “최근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가 ‘국민의 지지가 약해지고 있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1000억유로로 충분한가

1000억유로 규모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지원으로 재정위기의 불을 확실히 끌 수 있을지도 논란이다.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이 ‘임시 처방(bailout lite)’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재정·경제 현황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한때 연 6.7%(10년물 기준)를 넘었던 스페인 국채금리는 자금조달 위험수위인 연 6.0%를 여전히 넘고 있다. 25%를 훌쩍 넘는 실업률도 변화 조짐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4년 말까지 스페인 만기도래 국채가 1550억유로에 이르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1210억유로가 필요하다”며 “은행권 자본확충에 1300억~1800억유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제금융 자금이 스페인의 국가부채에 포함되면서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