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왔습니다.” 1987년 봄 어느 날, 팸플릿 한 꾸러미를 짊어진 청년이 부산 가마골소극장에 배달을 왔다. 이 청년은 배달을 마치고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진행되던 연극 ‘카사노바를 위한 예식’ 연습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며칠 뒤 인쇄물 배달을 위해 다시 극장을 찾은 이 청년은 아예 자리를 잡고 연극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기를 수차례. 당시 극단을 이끌던 이윤택 연출가는 그에게 “연극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 오달수 씨(44)가 배우의 길로 접어든 순간이었다.

내달부터 개봉될 ‘미운 오리 새끼’ ‘도둑들’ ‘공모자들’ 등 3편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는 오씨. 그는 재수생 시절 인쇄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연극을 접했다. “마치 연극이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최근 연극·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오씨처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국립극단의 ‘마이크로셰익스피어-맥베스전’에서 지난 10일 연극 ‘불면’을 공연한 연출가 김은정 씨(38)도 그중 한 명이다. 그녀는 미술 유학을 떠났다 연출가가 됐다. 도자기공예를 전공한 그녀는 1999년 이탈리아 국립미술원으로 무대미술을 공부하러 떠났다. 연극이론이 무대미술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1년 예정으로 프랑스로 또다시 갔다.

그녀는 1년 뒤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않았다. “공부하면서 연극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을 공부했기에 무대공간 전문가란 차별성을 갖고 연극을 해봐야겠다 결심했죠.” 결국 그는 파리8대학에서 연극전공 석사까지 마쳤다.

연극 ‘언니들’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희곡상 등을 받은 극작가 최치언 씨(42)는 핸드볼 선수 출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8년간 핸드볼을 했다. 사춘기 때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 심하게 방황을 해서 운동을 포기하게 됐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죠.”

최씨는 “다른 일을 하다 배우가 되기도 하고, 직장인 중에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다가 문학이나 운동 같은 하나의 장르로 발현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소설·희곡 모두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출가 김남건 씨(30)는 촉망받던 무용가였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한국무용 창작부문 남자부 대상을 받았다. 예술종합학교 3학년 때의 일. 그에게 ‘이야기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남자 무용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군대문제를 고민하던 중 군에 다녀와 본격적인 이야기 공부를 해야겠다고 계획했죠.”

그는 곧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2004년 학교를 중퇴하고, 2년 뒤 같은 학교에 연출과로 재입학한 것. 주목받던 무용가가 갑자기 연극을 하겠다니 주위의 만류가 대단했다.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은 제 과감한 선택을 응원해 주셨죠.” 그는 현재 친구 박범수 씨와 함께 ‘큰바위’란 팀을 만들어 활발하게 연극과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