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9세기 무렵 예술가들에게 ‘특별 대접’을 받는 질병이 있었다. 바로 결핵이다. ‘하얀 손수건 위의 선홍색 객혈’이 섬뜩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을 풍기기 때문이었을까. 가슴 깊이 숨겨진 감성을 일깨워주는 병이라고들 여겼다. 영국 시인 바이런만 해도 영혼의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시를 쓰고 싶었던 나머지 “결핵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프랑스 여성작가 조르주 상드는 결핵을 ‘낭만적 질병’으로 불렀다. 결핵으로 죽어가던 연인 쇼팽을 정성껏 돌보면서도 그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결핵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지인에게 ‘쇼팽이 영원한 은총으로 기침을 해댄다’는 편지를 쓴 게 증거다. 쇼팽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33명이나 매달렸지만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고작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방혈(放血) 치료를 권했을 뿐이다. 그래야 체액에 균형이 잡힌다고 믿었던 것이다.

결핵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된 건 행운이 따른 덕이다. 로버트 코흐라는 독일 의사가 결핵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해 염색을 하려 했으나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1882년 어느날 시료를 난로 곁에 둔 채 졸다가 깨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결핵균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난로에서 나는 열을 받아 염색이 됐던 거다. 결핵균은 여간 끈질긴 게 아니다. 약을 먹으면 낫는 듯하지만 잠복해 있다 다시 발병한다. 내성이 생겨 재발하면 더 강한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 보통 1~2년, 심하면 10년 넘게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결핵은 못 먹어서 생긴 병으로 여겼다. 소설가 김유정은 1937년 죽기 얼마 전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구렁이도 10여마리 먹어보겠다’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내 일거리를 부탁했다. 보신으로 병을 이겨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살림이 넉넉지 못하면 개구리 다리를 삶아 먹기도 했다. 영양이 넘쳐나는 요즘도 한 해 3만9000여명씩 결핵환자가 생기고 2300여명씩 목숨을 잃는다. 인구 10만명당 환자도 8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보다 못해 질병관리본부가 결핵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라는 뜻에서 주제를 ‘결핵, 생각보다’로 잡았다. 결핵예방 교육, 기침 에티켓 홍보물 배포와 함께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진다. 결핵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건 보균자가 많았던 데다 젊은이들이 입시나 다이어트에 매달리면서 몸에 무리가 간 게 한 이유라고 한다. ‘과거의 병’으로 안일하게 생각한 탓도 있을 게다. 뭐든 방심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