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찬바람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의 예·적금이나 국·공채,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찾아가는 중이다.

세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탓이 크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엔 스페인 등으로 불길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유로존이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또 유럽 재정위기라는 것은 이미 다 시장에 나와 있는 소재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처럼 시장에 대한 파급력을 가늠할 수 없었던 소재와는 그 충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유로존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작은 그리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 등 EU를 떠받치고 있는 대규모 경제가 흔들리면 세계 경제도 종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실제 외국인들이 돈을 빼 가는 바람에 최근 증시가 1800선 아래로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예금·MMF·CMA…돈이 몰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은행의 총예금 잔액은 920조원으로 전달 말보다 약 12조6000억원 늘었다. 정기예금 등 저축성예금이 10조원가량 늘어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예금에 돈이 몰려들다 보니 금리는 떨어지는 추세다. 은행 저축성수신의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금리는 작년 12월에는 연 3.77% 수준이었는데 지난 3월엔 연3.73%, 4월엔 연 3.72%, 5월엔 연 3.70%로 계속 내려가고 있다. ‘쥐꼬리’만한 이자를 받으면서라도 돈을 넣겠다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수시입출금이 쉬우면서도 금리가 다소 높은 MMF와 CMA로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만기 없이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은행보다 금리가 우위에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지난 한 달간 자산운용사의 MMF 잔액은 1조9000억원 증가했다. 4월 증가분(1조2000억원)보다 7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국·공채에 대한 선호심리도 지속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3월 말 연 3.55%에서 4월 말에는 연 3.45%로, 5월 말에는 연 3.32%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위험 회피성향이 증가하고 외국인 국채선물 순매수세가 지속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동안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누렸던 금투자는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금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골드뱅킹의 지난 6개월 수익률은 평균 -20% 수준에 그쳤다.


◆리스크 관리, 유동성 확보 필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손실’을 방지하려는 마음(리스크 관리)과 ‘기회’를 엿보려는 마음(유동성 확보)이다.

이 중에서도 지금은 기회를 보기보다는 당장의 손실방지에 방점이 찍히는 시기다.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지금이 안전자산을 확보해야 할 때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주요 투자자산에 대한 재점검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시장이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저가매입’ 차원에서 섣불리 달려드는 것도 삼가고 좀 더 기다리며 바닥을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박승호 국민은행 방배PB센터 팀장은 “전체 자산의 30%를 빼내 대기성 자금을 모아두는 ‘연못’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부장은 “예컨대 코스피가 1500 아래로 떨어질 때에도 버틸 수 있는지 봐야 한다”며 “빚을 내서 투자한 것은 일단 일부라도 정리해서 현금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최근 주가가 떨어지면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할 경우에도 원금손실 여부를 확인하고, 기초자산의 성격을 주의 깊게 파악해야 한다고 PB들은 조언하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