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ㆍ산부인과도 수술 거부"…의료대란 치닫나
다음달부터 모든 병·의원으로 확대 시행되는 포괄수가제(의료비 정찰제·DRG)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안과의사들이 다음달 1일부터 1주일간 백내장 수술을 거부하기로 한 데 이어 외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 등도 수술 거부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외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안과 개원의사회 회장단은 최근 긴급회동을 갖고 이 같은 방안에 합의했다고 의협 측 관계자가 전했다. 다음달 1일부터 수술 거부에 돌입할 경우 전면적인 의료대란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과에 이어 응급·외래환자 비율이 높은 이들 과에서 수술 거부에 돌입할 경우 상당수 환자들이 ‘수술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어 환자 생명을 담보한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노 회장과 개원의사회 회장들이 수술 거부에 합의했으며, 이번주 내로 각 의사회에서 이사회를 열고 결의한 뒤 오는 19일께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수술에 한해 거부하기로 했다”면서 “다만 응급환자의 경우 수술을 하되 수술 시기를 미뤄도 차질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거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은 의사들이 집단 수술 거부에 돌입할 경우 불법으로 간주,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들이 수술 거부를 할 경우 의료법 등에 따른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의사들이 내부적으로 의견을 완전히 통일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향후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포괄수가제는 전국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사전에 책정된 동일 진료비를 내도록 하는 일종의 입원비 정찰제로, 대상 질환은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치질, 자궁수술, 제왕절개 분만 등 7개 질병군이다.

1997년 시범도입된 이후 2002년부터 선택 적용토록 하고 있으며 현재 3282개 진료 기관 중 71.5%가 시행하고 있다. 이번에 전국 병·의원에 의무 적용되는 데 이어 내년부터는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실시된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가 불필요하고 과다한 진료행위와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입장이나 의협 측은 환자들에게 질 좋은 의료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수술 거부라는 초강경 대응에 나선 의협과 안과 이비인후과 외과 산부인과 등은 포괄수가제 도입에 반대하는 논리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내세우고 있다.

"외과ㆍ산부인과도 수술 거부"…의료대란 치닫나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포괄수가제가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당장 시행은 시기상조”라며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도입하면 의료의 질을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과 외과 등과 협의해 수술 거부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시각은 다르다. 포괄수가제가 의료 서비스의 적정 가격과 질을 보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행위별 수가제에서 병원 수입을 늘릴 수 있었던 ‘의료 양과 비급여 진료’가 사실상 통제되기 때문에 의협이 반대하는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를 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보고는 없다”고 지적했다.


◆ 포괄수가제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에 관계 없이 한 가지 질병에 대해서는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 예를 들어 백내장 수술을 했을 때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면 몇 번 진료를 받든 정해진 총액만 내면 되지만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선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비를 내야 해 과잉 진료라는 지적이 많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