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정도 더 연구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요. 동료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떠나야죠.”

이달 만 61세로 정년 퇴임하는 한 정부 출연연구소의 책임연구원 A씨가 꺼낸 얘기다. 올초까지도 그는 2016년까지 연구를 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과학기술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우수 연구자들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가 속한 연구원은 이달까지 정년을 연장하도록 인사규정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그는 상반기 퇴임자로 연구소를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가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정년연장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출연연구소들이 도입을 주저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국 27개 출연연구소에서 상반기에만 13명의 연구원이 정년을 맞았지만 이를 연장해준 연구소는 단 한 곳도 없다. 시행 반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인사규정 변경, 우수연구자 선발 방법 마련 등 시행 절차 모두를 마련한 곳이 없는 것.

출연연구소들이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와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도 이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노동조합의 반대 탓이다. 출연연구소들의 양대 노조 격인 전국공공연구노조와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는 우수 연구자에 한해 선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외환위기 때 65세에서 61세로 낮춘 정년을 연구원과 행정직 차별없이 모든 직군에 대해 환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다수 출연연구소 원장들은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연구원의 정년 연장은 출연연구소 내부에서 먼저 나왔다. 우수한 연구자들이 기회만 되면 정년이 긴 대학으로 옮겨가면서 연구소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는 사안이다.

노조는 행정직과의 차별 문제를 거론하지만 유럽발 글로벌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일반 직장인의 눈에는 이런 주장이 집단이기주의로 보일 수밖에 없다. 출연연구소보다 정년이 짧은 기업과 기관이 훨씬 더 많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유행어가 횡행하는 세태에 노조의 통큰 ‘밥그릇 챙기기’가 어렵사리 만들어진 과학분야 연구환경 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김태훈 중기과학부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