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되려면 '전문성'부터 길러야
‘글로벌 불황의 생존 무기(DNA)를 찾아라.’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건설업체들의 퇴출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에 몰려들어 ‘제로섬(zero-sum)’ 경쟁을 벌여온 데다 공공발주도 급감하고 있어 ‘생존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과 함께 ‘해외의 100년 장수 건설사’의 위험관리 방식과 경기침체 대응전략을 분석, 이들의 ‘성공인자’를 찾아봤다. 권오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산업연구실장은 “이들 기업은 자신들만의 확실한 특화종목을 토대로 안정적 사업다각화를 진행해왔다”며 “이 때문에 불황에도 흔들림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전문기업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글로벌 수준의 ‘주특기’가 생명줄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미국의 플루어(Fluor)사는 매출의 50%가 석유·가스 플랜트 건설부문에서 채워진다. 중동 및 카리브해 연안은 석유·가스시설이 풍부하지만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 기업활동 리크스가 크다. 이런 점을 감안해 플루어는 주요 지역별 매출비중을 각각 20%대를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즉 특정 지역에 공사물량이 몰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곳의 발주처에서 수주한 물량이 전체 수주의 1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 공사비 수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주자 관리도 철저하다. 플루어는 공개경쟁입찰보다는 ‘제안형 수의계약’을 선호한다. 전체 계약의 71%(2010년 말 기준)를 이렇게 수주했다. 발주자에게 공사에 투입될 ‘실제 비용(cost)’에 일정한 ‘수수료(fee)’을 붙여서 제안한다. 이른바 ‘실비정산 계약’이다. 반면 대부분 건설사들은 발주자가 제시한 총공사비를 기준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따낸다.

권 실장은 “플루어식 계약방식은 발주자들로부터 ‘플루어사가 공사비를 부풀리지 않고 적정이익만을 남긴다’는 신뢰를 얻지못하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플루어사는 최근 금융위기로 유럽·중동지역의 석유·가스 투자가 위축되자 산업·인프라 건설사업 비중을 48% 수준까지 끌어올리면서 수주품목 다변화를 하고 있다.

○경기상황 따라 탄력적 사업체계 구축

국내 건설업계는 그동안 ‘경기변동에 대한 대처능력’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00년대 초 주택시장 활황기에 풍부한 현금을 확보한 중견 건설사들이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3년을 못 버티고 극심한 부실에 빠진 것이 이를 입증한다.

반면 해외 유력 건설사들은 경기변동에 대한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호황기에는 사업 다각화를, 침체기에는 핵심사업에 집중한다. 불경기에는 공사응찰가격을 낮추고 리스크가 적은 사업으로 수주전략을 재빨리 바꾼다. 때로는 대형공사만을 고집하지 않고 작은 공사에도 적극 뛰어든다.

스웨덴의 스칸스카(SKanska)는 세계적 대기업이지만 공사비가 1500만달러(약 165억원) 이하인 중소형 공사 비중이 전체의 91%에 이른다. 작은 공사는 시공비를 못 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다.

세계 각지 소규모 전문업체를 인수·합병하는 데 적극 나선다. 경기가 악화되면 수시로 자산매각을 하는 이른바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하는 것도 특징이다. 전략적 제휴에도 강하다. 스웨덴에선 최근 유명 목조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와 공동으로 ‘보클록(BoKlok)’이란 브랜드로 조립식 목조주택을 개발했다. 불경기를 감안해 저가형 공장생산형 조립주택을 내놓은 것이다. 주택건설과 그린빌딩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토대로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건설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상호보완적 ‘멀티사업 시스템’

건설은 본래 경기에 민감한 수주용역 사업이다. 그래서 침체기에 대비한 사업다각화 경영이 일상화돼야 한다. 프랑스의 벵시(Vinci)는 단순도급계약(건설공사만 해주는 계약)과 민자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단순도급계약은 ‘단기간 특정공사 수행’으로 대규모 수익을 올려준다. 반면 민자사업은 도로 등 공공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유지보수 서비스까지 해줘야 하는 ‘장기적 공사’다. 수익도 장기간 창출된다. 장단기 사업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경영체계가 장점이다.

벵시의 민자사업 부문은 설계·건설·금융·운영 서비스 등을 모두 제공하는 ‘원스톱 멀티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프랑스 도로의 절반 이상(4385㎞)을 ‘유지 관리’하는 ‘벵시 오토루츠(Vinci Autoroutes)’는 초기 투자비 이외에는 별다른 추가투자 없이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45%에 달한다.

○M&A로 글로벌 시장 공략

독일의 호티에프(Hochtief)는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해외건설 수주 1위 기업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미국 호주 동남아시아의 건설전문업체들을 사들여 세계 전역에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수주량 기준으로 보면 독일 비중이 7.8%, 기타 유럽은 3.8%로 낮은 반면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가 71%, 미주지역이 17.4%에 이른다. 주택뿐 아니라 교통인프라, 자원개발 등으로 사업분야도 확대하고 있다. 민자투자사업 중에는 공항건설과 공항시스템 관리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