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중국이 만리장성을 넘은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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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담이나 성벽의 기능은 외부와의 차단이다. 목적은 둘 중 하나다. 침탈당하지 않거나, 빼앗은 것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의 오래된 성벽은 대부분 방어용이었다. 왕조마다 북방 유목민의 남하를 막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중국 담벼락의 대장은 물론 만리장성이다. 인류최대의 건축물이다. 중국은 최근 이 만리장성을 늘렸다. 2009년까지만 해도 6300㎞라고 했던 것을 2만1196.8㎞로 수정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그 옛날에도 지금과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의 국경선 안에 동쪽의 옛 발해와 고구려, 서쪽 끝의 신장 영토까지 들어온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논리다.
입맛대로 변신하는 중국
중국은 이처럼 필요에 따라 뭐든 변화시킨다. 중국을 읽는 키워드는 ‘변신’이다. 환구시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 발전의 핵심요소로 꼽힌 게 ‘변(變)’이다. 인민일보도 공산당의 역사를 여시구진(與時俱進·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고 전진한다)으로 규정했다. 변화의 대상엔 제한이 없다. 공산혁명에 성공한 지 30년 만인 1979년 자본주의가 도입됐다. 집단농장이 폐지되고 민간기업도 허용됐다. 공산당의 자기부정이건만 개의치 않았다.
2000년에는 자본가를 노동자 농민과 동등한 지위로 끌어올리고 공산당원으로 받아들이는 또 다른 변신을 했다. 장쩌민 당시 총서기가 제시한 3개 대표노선은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이었다. 광범위한 인민의 범위에는 기업인과 자본가가 노동자·농민과 함께 포함됐다. 이 노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과 함께 아직도 당규의 최고 지도이념이다. 참시당했던 공자도 부활했다. 공산당은 과거 노예제도를 정당화한다며 공자를 ‘박멸’했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에 826개의 공자학교와 학당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문명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공자를 중국의 아이콘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유아적 패권주의 우려
변신의 나라 중국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힘을 바탕으로 독단과 독선을 휘두르고 있어서다. 중국 지도부의 입에서는 ‘핵심이익’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튀어 나온다.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처음 등장한 핵심이익은 △중국의 기본제도와 국가안전유지의 보호 △국가주권과 영토보전 △경제사회의 안정 및 발전과 관련된 것을 통칭한다. 쉽게 말해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의미다. 신장위구르나 티베트의 영토문제, 보편적 인권, 댜오위타오의 영유권 분쟁 등을 모조리 핵심이익의 틀안에 집어넣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 것이나 남중국해의 섬에 대해 필리핀 등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핵심이익을 건드린 것이라며 반발한다. 이달 초 열렸던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선 중앙아시아가 핵심이익 지역으로 추가됐다.
경제력이 강해지면서 중국의 핵심이익은 이처럼 늘어난다. 그러나 일방주의일 뿐이다. 국민을 학살하는 수단정부를 지원하고, 혈맹이란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의 뒤를 봐주는 태도가 다 그런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뽑던 불교 지도자 판첸라마를 중국정부가 임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진정한 대국(大國)을 지향한다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다른 국가나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핵심이익은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독선을 고집한다면 ‘덩치 큰 소국(小國)’을 면하기 어렵다. 만리장성을 마음대로 늘리는 중국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 유아적 패권주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