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아들을 불렀어야지.”

내곡동 사저 의혹 수사를 지켜본 검찰 출신 원로 변호사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검찰 수사결과를 들여다보니 크게 잘못된 부분은 없어. 그런데 과정이 어설펐어.” 서울중앙지검이 7명의 피(被)고발인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지만, 그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한 차례 서면조사하는 데 그친 대목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것.

“시형씨의 답변서를 받아보니 아귀가 딱 맞았다. 추궁할 게 없어서 부르지 않았다”는 검찰의 궁색한 변명은 오히려 역공의 빌미만 제공했다. “시형씨를 불렀어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검찰 원로에게선 긴 한숨만 흘러나왔다.

사흘 뒤 발표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결과도 알맹이 없는 ‘맹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의 잇따른 헛발질에 MB 퇴임 후가 걱정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죽했으면 여당까지 나서 “국민적 의혹을 풀려면 특검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을까. 이제 검찰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의심받게 생겼다.

권력 다툼에 국민만 희생

“이런 검찰보다야 그래도 우리가 낫지 않나”라며 어떤 부장판사가 뿌듯해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굳이 ‘가카빅엿’ 판사나 ‘가카새끼 짬뽕’ 판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사건은 법원 내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GS칼텍스 등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하자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재가 “대법원 판결은 위헌”이라고 선고한 것. 대법원이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최고 법원이 어디냐’를 놓고 살얼음판을 걷던 양측 간 자존심 대결이 ‘상(商)도의’마저 내팽개칠 만큼 골이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판사들에 따르면 대법관으로 영전하지 못한 고위 법관들이 헌법재판관으로 가다보니 양 법원 간에 우열의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를 헌재 측에서 달갑게 여길 리 없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차에 대법원 측 허를 찌른 것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한 판사는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이강국 소장 후임에 관례와 달리 대법관 출신 대신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되면 진짜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삼세판’이란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4심제가 고개를 치켜들면 ‘못 먹어도 고(go)’하는 국민정서상 변호사들만 살맛나는 소송천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커지게 된다.

사법정의 위해 초심 지켜야

내달 10일 퇴임을 앞둔 한 대법관에게 소감을 물으니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6년 재임기간 동안 서류더미와 씨름하는 동안 혹시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대과없이 임기를 마치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판·검사들은 가능하면 퇴임 후에 변호사 개업을 안했으면 한다는 사견을 내비쳤다. 퇴임 이후를 떠올리는 순간 추상같은 심판의 칼날이 무뎌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지. 그래야 검찰이 살지.” 검찰 원로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둔 지금이야말로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법과 양심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는 검찰수사와 판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둥 대선을 앞두고 상식을 넘어선 권력투쟁과 포퓰리즘 정책 양산에 몰두할 정치권에 재갈을 물릴 곳은 그래도 법조밖에 없지 않나. 법원과 검찰이 내지르는 헛발질의 희생양은 결국 국민들이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