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는 2004년부터 전체 직원 2만명 가운데 5000여명을 대상으로 재량근무의 일종인 HI워크를 실시하고 있다. HI는 히타치의 혁신을 뜻한다. 재량근무는 연구원 등 전문직이나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근무시간은 직원 스스로 선택한다. 이 회사의 에미 유스케 인재총괄본부 주임은 “재량근로는 근로자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얘기다.

코니카미놀타 역시 이노베이션코스란 이름의 재량근로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의 와카시마 스카 인사부장은 “직원들이 스스로 근무시간을 결정함으로써 조직을 도전적으로 바꾸고자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됐다”며 “급여도 일한 시간만큼 지급하는 시간급에서 벗어나 능력에 따른 성과급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노베이션코스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일반 종업원에 비해 성과 반영도가 높다”며 “그래서인지 도전정신이 충만한 젊은층이 재량근로에 관심이 많고 50대 이후 직원들은 다소 꺼린다”고 소개했다. 재량근로를 선택한 직원들의 잔업수당은 기본급의 14%가량(4만~6만엔)이 제공된다. 현재 3400여명이 이 회사의 재량근로에 참여하고 있다.

재량근로제가 일본 기업들의 관심을 끌며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전체 기업의 도입률은 11.2%로 저조한 편이지만 근로자 1000인 이상 기업은 25.9%에 달한다. 아오야마 게이코 후생노동성 노동조건정책과 조사관은 “변형근로시간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은 50%를 넘지만 간주제도(재량근로제)를 도입한 기업은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량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지만 그 제도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기부품 컴퓨터 등을 제작하는 NEC는 기업의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해 V워크란 이름의 재량근로를 실시하고 있다. V는 vital(활력) 또는 value(가치) 등을 의미한다. V워크에 참여하는 직원들에 대해선 회사가 별도로 출퇴근 관리를 하지 않고 하루 1시간 상당의 잔업수당을 지급한다. 기본급으로 따져 10% 수준으로 매달 5만~6만엔을 지급한다. 1주일에 하루는 재택근무도 실시한다.

이 회사는 유연근무제의 불편한 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불통을 꼽았다. 오전 8시30분께 회의를 시작하고 싶지만 출근시간이 다르다 보니 여의치 않다는 것. 따라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무조건 출근토록 하고 오후 3시부터 9시30분까지는 직원 스스로가 사정에 따라 업무시간을 조절하도록 변경했다.

반면 변형근로시간제를 채택하는 기업은 50%를 넘길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쓰비시상사다. 이 회사는 여러개의 출퇴근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표준 출근시간은 오전 9시15분, 퇴근은 오후 5시30분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선택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15분과 30분씩 늦춰 2가지를 더 운영한다. 즉 출근은 기존 오전 9시15분에 9시30분과 9시45분, 퇴근은 기존 오후 5시30분에 5시45분과 6시 등을 추가해 부서 형편에 따라 달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미쓰비시상사는 또 관리직을 대상으로 출근시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플렉스타임(유연시간)근무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출퇴근시간은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10시 사이에 스스로 결정한다. 다만 코어타임(core time·핵심시간대)인 오전 11시~오후 3시는 반드시 업무시간대에 포함시켜야 한다. 관리직 3800여명 중 절반가량이 플렉스타임제에 동참하고 있다.

플렉스타임근무제는 하루 일정한 시간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로시간을 직원 스스로가 재량껏 결정하는 재량근로제와 다르다. 단지 미치코 미쓰비시상사 인사조직팀장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같은 시간대에 함께 직장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필요해 이를 감안해 유연근로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