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유럽 자동차 판매(564만1371대)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3% 감소한 반면 현대·기아자동차(32만7243대)는 15.7% 늘었다. 현대·기아차의 5월 말 현재 유럽 시장 점유율은 5.8%로, 올해 처음 6%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도 호조를 보이며 올 들어 5월까지 해외에서 총 296만9928대를 팔아 전년 동기(262만2843대)보다 13.8% 증가했다.

이런 선전 속에 정몽구 회장(사진)이 25일 해외법인장들을 긴급 소집한 것은 유럽 위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임에 따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자만에 빠지거나 방심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위기 때마다 특유의 역발상 경영을 통해 난관을 헤쳐온 정 회장이 어떤 승부수를 내놓을지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정 회장은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사례를 들며 “유럽 위기도 선제적 대응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는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된 창의적 마케팅으로 ‘어슈어런스’를 꼽았다. 자동차회사가 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일정 조건을 만족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말한다. 현대차는 2009년 미국 경기침체 때 차량을 구매한 고객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전략을 펼쳐 큰 성공을 거뒀다.

정 회장은 주요 경영 고비 때마다 역발상 경영을 통해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왔다. 동반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1998년 기아차를 인수,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작년에는 ‘차를 더 공급해 달라. 공장을 더 지어야 한다’는 미국 판매법인과 딜러들의 요구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해 하반기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로존 위기 확산 등으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침체될 조짐을 보이자 설비 증설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유럽 지역을 방문했을 때 “글로벌 자동차시장 위축은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지시했다. 유럽 업체들이 감산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품질과 가격 경쟁력, 맞춤형 마케팅을 앞세워 위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현대·기아차는 유럽에서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한 32만7243대를 판매했다. 반면 유럽 업체를 비롯해 GM, 도요타, 폭스바겐 등 주요 업체들의 판매는 모두 줄었다.


◆중국시장에 ‘승부수’

정 회장은 작년 11월 미국 판매법인과 딜러들의 증설 요구를 뿌리친 직후 중국 장쑤성 난징시로 향했다. 기아차 중국 3공장 건설 투자협의서를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번지고 있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공장 증설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 앞으로 1~2년간은 성장세가 다소 주춤할 수 있지만 2014년께 다시 고도성장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 회장은 이달과 다음달 잇달아 중국을 찾는다. 오는 29일 장쑤성 옌청시에서 열리는 기아차 중국 3공장 기공식(2014년 완공 예정)에 이어 다음달에는 베이징현대차 제3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베이징현대차 3공장(연산 40만대)이 완공되면 현대차는 중국에서 연산 10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기아차까지 합한 연간 생산능력은 143만대다.

현대·기아차의 2007년 중국 시장 판매량은 33만2000대였다. 이후 2009년에 81만1000대로 80만대를 돌파하며 도요타(62만7000대)를 제쳤다. 작년에는 117만3000대(현대차 74만대, 기아차 43만3000대)로 4년 만에 3.5배나 늘었다. 폭스바겐과 GM에 이어 중국 내 3위 업체로 자리잡았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현대·기아차의 공급물량이 중국 시장의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베이징 현대차 3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 공급난이 해소돼 판매량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건호/최진석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