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뭐가 맞는지 헷갈린다. 경실련 설문조사는 반대가 61.0%인데, 국토해양부 설문은 찬성이 64.5%다. KTX 경쟁도입 얘기다. 설문 결과가 의도에 따라 고무줄이긴 해도 좀 심했다. 경실련은 KTX 민영화로 요금 인상 가능성을 부각시켰고, 국토부는 경쟁이 도입되면 코레일보다 싸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프레임(생각의 틀)으로 설문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정반대 결과다.

초기 판세는 국토부의 열세였다. 서울지하철 9호선 파문이 민영화 트라우마를 유발한 것이다. 코레일 노조(철도노조)가 내건 ‘민영화는 곧 요금폭탄’이란 프레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민주통합당 민주노총까지 가세해 진영싸움으로 번졌고,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유보를 요구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요금 · 연착·불안…불만투성이

하지만 경쟁도입이 민영화가 아님은 코레일도 모르지 않는다. 코레일 지분을 파는 것도, 국가소유인 선로를 파는 것도 아니다. 9호선처럼 최소수익보장도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철도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MB정부가 하는 건 다 싫다”는 식이다.

KTX를 이대로 둬도 괜찮다는 말인가. 코레일만 왜 독점특혜를 유지하나. 14조원의 고속철도 부채는 무슨 돈으로 갚나. KTX를 자주 타는 지인들에게 이용소감을 들어봤다. △요금은 비싼데 서비스 부재 △좌석 불편, 화장실 불결 △할인없이 경유지 늘려 △잦은 고장과 연착 △인터넷선 불량, 전원공급 불가 △품질대비 비싼 도시락… 등등.

KTX 요금은 2005년 개통 이래 연평균 3.55% 올랐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3.14%)을 웃돈다. 주말 서울~부산 간 요금은 5만7700원으로 저가항공인 에어부산(6만4000원)과 고작 6300원 차이다. 게다가 ‘사고철, 고장철, 공포철’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국민은 코레일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독점사업에 경쟁을 도입했을 때 어떻게 요금과 서비스가 개선됐는지는 KT 대한항공 KT&G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코레일이 KTX 경쟁도입에 반대할 일말의 명분이라도 세우려면 요금을 낮추고 서비스를 대폭 개선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조건 경쟁은 안 된다니 기득권 지키기로 비쳐질 뿐이다.

국민편익 놓고 정치쟁점화 말라

코레일이 공기업 중에서도 고비용 저효율임은 코레일도 부인하지 못한다. 매년 6000억원 안팎 적자인데 인력은 정원보다 1613명 초과다. 1인당 매출(1억6000만원)이 최하위권이고, 매출의 50%가 인건비다. 만성적자 원인이 과잉인력에 있는 것이다. 공사화하면서 5개이던 지역본부를 17개로 늘렸고 관리자가 4명 중 1명꼴인 6500명에 이른다. 역장 밑에 부역장을 2명이나 두고, 팀원 2~3명에 팀장 1명꼴이니 현장 노조원들까지 불만이다. 이런 방만경영을 국민혈세로 계속 메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KTX 민간사업자에 대해 기존 코레일보다 요금은 싸게, 선로이용료는 더 내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대로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MB정부의 재벌 특혜, 알짜 KTX 팔아먹기 식의 선전전술이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을 헷갈리게 만든다. 정치권이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KTX 경쟁도입을 정치쟁점화 할 일이 아니다. 국민편익의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옳다.

아울러 반대여론까지 잠재울 파격적인 대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혈세로 메울 적자노선을 정부가 운영하고, 제2 코레일을 국민주로 공모해 주주에겐 할인혜택을 줄 수도 있다. 언제까지 끌려다닐 텐가. 좌고우면하다 허송한 이 정부의 마지막 숙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