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부 신설을 장담한다. 여당, 야당이 서로 찾아와 부처 신설을 약속했다는 소식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정부조직을 미끼로 이익단체 표 구걸에 분주하다. 여당은 이미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부활을, 민주통합당은 정보미디어부 신설을 공공연하게 말한다. 특정 지역을 의식한 해양수산부 부활 얘기도 나온다. 또 다시 조직개편 대소동이 일어날 모양이다.

행정학회가 ‘국가발전을 위한 과제와 전략’ 학술대회에서 차기정부 조직개편 원칙과 방향을 제시했다. “현 정부가 부처 통폐합을 했으나 시너지 효과 창출에 한계를 보였다. 차기정부는 전문성에 기초해 부처 소관기능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른바 ‘대(大)부처주의’에서 ‘전문부처주의’로 가자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걸고 당시 18부 4처 정부조직을 15부 2처로 줄였다. 행정학회 논리는 교육과학기술부,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등 통합부처는 그 전으로 되돌리고, 정통부 등은 부활시키며, 중소기업부 등은 신설하자는 요구에 길을 터주는 것이다.

大부처에서 다시 전문부처로?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이다.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비대한 정부조직 축소를 공약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대선주자들까지 미래형 정부조직을 내걸었을 정도다. 당시 행정학회는 부처와 장관, 공무원 수를 확 줄이는 강력한 감축안을 제시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후퇴했을 정도다. 그때 논리는 정반대였다. “정부조직과 인력 확대는 공공지출 낭비와 민간부문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을 늘린다. 부처 통폐합을 통한 ‘대부처주의’로 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 주장을 폈던 행정학자들은 지금 다 어디 갔나. 아니면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기로 작정한 것인가.

하기야 지경부 방통위 등으로 흩어질 당시 정통부 관료들이 분을 삭이지 못했던 건 특정 행정대학원과 학자들이었다. 프로젝트 등으로 그렇게 밀어주었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는 배신감의 표출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 부활, 격상을 노리는 부처들은 이름있는 행정학자들에게 프로젝트를 못줘 안달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 만능주의'의 고질병

물론 조직개편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리를 180도 바꾸려면 그에 걸맞은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부처 간 통폐합의 시너지가 별로라지만 그게 조직개편 탓이라고만 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오히려 통폐합 후에도 부처가 과거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 그런 건 아닌가. 아니면 더 복잡해지고 동태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을 정부가 더 이상 쫓아갈 능력이 없어 그런 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조직개편의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의 능력 문제요, 정부의 역할 변화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정부가 모든 걸 주도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소신 있는 행정학자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의 정부조직 개편이 있었지만 효과 측정은 단 한번도 없었다.” 어느 행정학자의 고백이다. 또 다른 행정학자는 “국내외를 통틀어 행정조직 개편으로 원하는 목적을 이뤄낸 사례는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되풀이되는 정부조직 개편 요구의 근저에는 정부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수출도, 정보기술(IT) 산업도, 과학기술도 정부가 다한 것인 양 홍보하는 공무원들이다.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정부조직 타령부터 하는 이해단체들도 수두룩하다. 이렇게 스며든 정부만능주의를 정치권은 또 표 얻기에 이용해 먹는다. 여기에 행정학자들마저 덩달아 춤을 추면 어쩌자는 것인가.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