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900만원 벌기’와 ‘1000만원을 벌 수 있는 90%의 확률’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대부분은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며 전자를 택한다. 900만원 이익의 주관적 가치가 10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는 90%의 가치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럼 ‘확실히 900만원 잃기’와 ‘1000만원을 잃을 수 있는 90%의 확률’ 앞에서는 어떨까. 이럴 때는 도박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900만원 손해로 인한 피해가 1000만원 손해 확률 90%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판단이나 행위의 결과로 이득을 얻기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욕구가 훨씬 강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확실히 900만원 벌기’를 좋아하고, ‘1000만원을 잃을 수 있는 90%의 확률’에 도박을 거는 이유가 다 이 손실회피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실회피 특성은 ‘전망이론’의 뼈대를 이루는 세 가지 인지적 특징 중 하나다. 전망이론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설명하는 연구다. 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대니얼 카너먼이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1979년 발표했다. 카너먼 교수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이 연구로 ‘행동경제학’이란 영역을 개척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그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후 10년 만에 처음 발표한 책이다. 책의 주제는 ‘직관의 편향’이다.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이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카너먼 교수는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정신작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직관’을 뜻하는 ‘빠른 사고(시스템1)’와 ‘이성’을 의미하는 ‘느린 사고(시스템2)’다.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동물적 감각의 순발력, 2+2의 정답이나 한국의 수도이름 대기처럼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정신활동이 시스템1이며, 나라 살림이나 어려운 수학 방정식처럼 심사숙고한 끝에 처리하는 정신활동이 시스템2다. 그러면서 결함을 수반하는 ‘직관의 편향’에 초점을 맞춘다.

카너먼 교수는 사람들은 수집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고 말한다. 직관적인 시스템1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을 은밀하게 조종한다는 것. 선택 문제들의 비논리적 특징에 영향을 받는 ‘프레이밍 효과’, 문제의 한 단면이 종합 평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초점착각’ 등 심리연구들을 동원한다.

손실 회피도 시스템1의 기능상 특징의 하나다. 사람들은 손해를 이득보다 크게 생각해 손실을 피하는 쪽을 선택하는 게 보통이다. 동물 세계의 텃세 싸움에서도 똑같이 이 손실회피 원칙이 드러난다. 대개는 자기 영토를 지키는 쪽이 성공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주의적 편향’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띈다.

기업인을 포함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미국 중소기업들이 5년간 생존할 확률은 35% 정도지만, 기업인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성공 확률이 60%는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 운전사의 90%는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착각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카너먼 교수는 직관적 사고과정에서 비롯되는 이런 오류들을 막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첫째, 인지적 지뢰밭에 있다는 신호를 인식해 사고의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2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또 개인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하는 힘을 갖춘 조직이 오류를 더 잘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