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아니, 여-름이니까 물-냉면.”

장마리 아르노 사노피 아벤티스 코리아 사장(50)이 꽃등심을 맛나게 먹고 난 뒤 마무리 식사를 주문하면서 던진 한국말이다. 프랑스인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코냑이 아니라 소주. 심지어 ‘잔돌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 최고 이공계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관료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취향치고는 너무 한국적이다. “소주를 많이 안 먹어봐서 그런 것 아니냐”는 약간 삐딱한 질문을 던지자 바로 “두 병 정도가 다음날 숙취도 없고 딱 좋다”란 반격이 들어왔다.

사노피 아벤티스 직원들이 ‘가장 친근한 상사’로 꼽는 아르노 사장은 1998년 아벤티스의 전신인 프랑스 제약사 롱프랑 한국지사(이후 아벤티스파마)에 부임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항암제사업부 부장을 맡을 때 발족 초기 회사를 안착시키느라 과음하는 날이 잦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에 깨보니까 양복이 바뀌어 있었다.” 한국 남성 직장인이면 한 번쯤 겪었을 이 난감한 상황에 서래마을 한국회관에서 저녁 자리를 함께한 모두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롱프랑과 독일계 제약 기업 훽스트가 합병해 출범한 회사가 아벤티스. 이 회사가 사노피 신데라보와 합병해 글로벌 5위 제약사인 사노피 아벤티스가 2004년 탄생했다. 파리 및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으며 지난해 기준 글로벌 매출은 334억유로(약 50조원)다. 한국법인 매출은 3440억원. 영국의 한 컨설팅업체는 사업 포트폴리오(신흥시장·당뇨·백신·소비자헬스케어·희귀의약품·동물의약품)가 다양하고 현지화 전략이 뛰어난 사노피 아벤티스가 5년 후 화이자를 제치고 글로벌 1위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아르노 사장을 보면 사노피 아벤티스의 현지화 전략이 몸소 느껴졌다.

◆한국 음식은 건강입니다

서래마을에 사는 그가 가족들과 가끔 한국회관 1층에서 식사를 하지만 인터뷰 약속이 잡힌 2층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프랑스식뿐 아니라 한식 일식 타이식 중식 등을 날짜별로 달리 즐기는 게 그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의 부인은 일본인. 프랑스 리옹으로 유학온 아내를 만나 연을 맺었으며, 몇 년 뒤 주일 프랑스대사관으로 부임하면서 재회했다고. 일본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롱프랑 한국지사 부임 후 한국서 아들을 낳았다. “한국이 우리 부부의 끈을 이어 줬습니다.”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인 그의 아내는 프랑스 벨기에 일본 한국인 등 국내 다양한 커뮤니티와 교류하며 아르노 사장을 내조하고 있다.

“한국 음식은 매일매일 반찬에 ‘건강’을 담고 있으며 제약사 입장에서 볼 때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르노 사장은 푸짐함과 풍성함, 그러면서도 칼로리 균형이 맞는 것을 한식의 최고 장점으로 꼽았다. 차가운 맥주를 권하니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케이~.”

12세인 그의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있다. 태어난 곳이 ‘차병원’이라고 그는 또렷이 말했다. 아르노 사장은 11년은 일본, 4년은 한국, 3년은 필리핀, 1년은 싱가포르에서 보냈다. 누구나 ‘아시아 전문가’로 볼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는 손사래를 쳤다. 자신보다 더 많은 커리어를 쌓은 전문가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사노피 아벤티스의 방침이라고 한다.

꽃등심이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취재진이 “지금 먹어야 맛있다”며 고기를 권하자 “생큐~”를 연발했다. 소주가 한 순배 돈 후 잔을 바꿔 권했을 때도 스스럼 없이 받았다.

◆전환기 제약업계, “혼자 애쓰지 마세요.”

그는 국내 제약업계를 ‘전에 없던 전환기’로 규정했다. 물량 중심 혹은 제네릭 위주 영업에서 혁신형 산업으로 바뀌는 길목이라는 설명이다.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고, 아차하는 사이 뒤처지면 해당 기업이 사라져야 할 운명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사노피 같은 대형 제약사도 예외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는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으로 대처해야 하며, 그 첨병이 제약바이오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사들과 국내 기업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사노피 아벤티스는 지난해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과 임상시험 협약을 체결했으며 국립암센터와는 항암신약물질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바이오니아 등 바이오기업과도 협력관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는 또 ‘중개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개연구는 과학자의 책상에서 나온 기초연구부터 실제 판매까지를 연계하는 기법이다. 많은 기초과학연구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상과정에서 대부분 탈락하기 때문에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개연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중개연구의 최적지로, 향후 10년 내 1~2개의 글로벌 신약을 한국과 협력해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르노 사장이 국내 제약업계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단독으로 모든 걸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다. 그는 과거 대형 제약사의 모델도 따르지 말라고 덧붙였다. 현재 화두가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인 만큼 전략적으로 파트너를 물색하고 협력하라는 것이다. 사노피의 대표 제품은 세계 1억명 이상의 환자에게 처방된 항혈전제 플라빅스다. 플라빅스에 이어 노리는 두 번째 글로벌 블록버스터는 당뇨치료 주사제 란투스다. 그는 “수십년간 안정적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환자들이 원하는 맞춤형 헬스케어 모델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면함, 사고력, 사회성이 합쳐져야 완벽한 교육

출신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얘기가 나오자 화두가 교육으로 바뀌었다. 그의 아들이 다니는 서울프랑스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은 30% 정도지만 이들이 오히려 프랑스인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이 가진 엄청난 교육열과 근면성을 경이로워했다. 그러나 프랑스 교육의 강점으로 한국 교육이 갖지 못한 ‘종합적인 사고력’을 꼽았다.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널려 있는 지식을 취사 선택해 활용하는 법을 훈련하는 교육이 프랑스식이라는 것이다. “한국식 교육열과 프랑스식 사고력이 합해지면 완벽한 교육이 될 겁니다.”

"한국은 '임상 연구' 최적지…글로벌 신약 10년내 나올 것"

아르노 사장은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이 학교는 한국처럼 전공이 세분화된 것이 아니라 수학 물리학 등 이과 전반을 배운다. 그는 또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석사 과정인 꼬르데민을 마치고 프랑스 산업국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생의 80% 정도가 이 같은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거쳐 공무원 경험을 한 뒤 민간 기업으로 옮긴다고 했다.

◆인생은 단 한번, 마음 속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드디어 만들어졌다. 취재진이 괜찮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예~오케이’. 곁에 있던 김선영 사노피 기업사회공헌 이사가 거든다. “이렇게 스스럼 없이 먼저 다가가는 사장님은 처음 봤어요. 회사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근엄과는 거리가 멀게 사진기를 들고 직접 직원들을 찍으며 좋아한답니다.” 사진을 무척 좋아하는 그는 손수 찍은 사진 1만5000여개를 플리커닷컴(Flickr.com)에 올려 놓고 지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르몽드지와 이메일 등을 체크한 후 들르는 곳이 여기다. 사진 동호회 회원들과 종종 청계천에 나가 누가 제일 잘 찍는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각자 2시간여 동안 흩어져 사진을 찍고, 점심 때 모여 서로 품평을 한 뒤 가장 잘 찍은 5장을 고르는 식이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안정적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 없나”고 묻자 잠시 머뭇거린 뒤 미소를 머금고 “저도 가끔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경력으로 볼 때 금융권에 진출했으면 지금보다 수 배에 달하는 소득을 올릴 수도 있었다는 것. 현재 프랑스 2대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 BNP 파리바 행장이 모두 자신의 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이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요. 후회는 없습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며, 예방과 치료 등 사회적 기여가 즉각적 효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직업보다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다국적회사 사장을 할지 상상도 못했다. 다만 매번 찾아오는 결정의 순간에 비겁하게 물러나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니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고 한다.

“함-께 갑시다. 고맙습니다.” 아르노 사장이 현재 자신이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한국 기업, 병원, 학계와의 진정한 협력”이라며 건넨 또렷한 한국말이다.


아르노 사장의 단골집 한국회관

청정 한우 생고기 전문점…서래마을 '명소'


한국회관은 생고기 전문점이다. 매일 전국에서 도축해 배송되는 청정 한우만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고 한다. 식당 바로 앞 마을버스 정류장의 이름이 ‘한국회관’일 정도로 서래마을에선 입지를 굳히고 있다. 올해로 20년째.

꽃살 꽃생등심 갈비안창 등 생고기에서 육회, 생갈비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다. 특히 기름기를 뺀 담백하고 깔끔한 육수와 연하고 부드러운 갈비가 들어간 갈비탕은 남녀노소 모두가 찾는 히트 메뉴다. 보통 음식점들이 살이 별로 없는 조그만 갈비 몇 점을 넣은 채 ‘갈비탕’이라고 팔기 일쑤지만, 한국회관 갈비탕엔 큰 갈빗대가 큼지막한 뚝배기에 반쯤 걸쳐 나온다.

버섯불고기 야채비빔밥 선지해장국 등도 결코 맛이 뒤지지 않는다. 남도 시골에서 공수되는 묵은지와 칼칼하고 진한 맛의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서래마을 입구 육교에서 이수교 방면으로 250m가량 올라가면 보이는 2층집 건물이다. 갈비탕 1만원, 꽃등심 1인분 3만8000원, 생갈비 1인분 5만5000원. (02)595-3355.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