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기금의 은행 직접지원과 국채매입 허용, 우선변제권 폐지
연내 금융감독시스템 마련..1천200억유로 경기부양 투자

유럽연합(EU)이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단기 대책들에 29일 새벽(현지시간) 전격 합의했다.

EU 정상들은 전날 오후 3시에 시작 다음날 오전 4시30분까지 13시간 넘는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유로존 구제기금의 역할 변경 등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타결했다.

정상회의는 국채시장 안정책으로 우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로안정화기구(ESM) 등 구제기금이 자본재확충이 필요한 유로존 은행들을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를 통해서만 은행을 지원함으로써 정부 부채가 늘고 결국 스페인 등의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상회의는 또 구제기금이 위기국가의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아울러 스페인에 지원하는 구제자금의 변제 선순위권을 없앴다.

그동안에는 채무국이 만일의 사태 발생 시 구제기금에 우선적으로 지원금을 변제하도록 돼 있어 민간 투자자들은 위험국 채권 투자를 기피했다.

정상회의는 그러나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위기 증폭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유럽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만든 뒤에 이런 지원책을 시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독일 측의 주장이 반영된 이 감독 시스템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주도해 연말까지 만들게 된다.

이 시스템은 또 향후 유럽차원의 은행동맹으로 확대될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정상회의 첫날 회의가 29일 새벽 끝난 뒤 합의 사항들을 발표하면서 "시장을 진정시키고 위기 재발을 방지하는데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었다"고 자평했다.

실제 금융시장도 이 같은 대책들을 환영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9일 장이 열리자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진 반면 유로화 가치와 각국 증시가 급등세를 보였다.

시장 관계자들은 당분간 이번 합의가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지만 "금융감독 시스템 마련 이후", "우선변제권 삭제는 스페인에 대해서만" 등 전제조건들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상회의는 거시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긴축에서 성장으로 바꾸고 대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펼치는 내용의 성장과 고용 협약을 체결키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1천200억 유로를 경제 취약국가들의 위기탈출과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한 사업에 투자한다고 반롬푀이 의장은 밝혔다.

이와 별도로 수송과 지속가능 에너지, 디지털 분야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채권 발행을 위해 회원국들이 50억 유로를 내기로 했다.

투자 재원의 절반가량은 유럽투자은행(EIB)의 자본금을 늘려 대출 능력을 확대함으로써 조달하고 나머지는 EU의 발전기금 등 기존 재원들을 전용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회원국들이 신규로 내는 돈은 150억 유로 안팎에 불과하고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기업 등 민간의 돈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어서 경기부양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상들은 회담 이틀째에 유로존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은행동맹 설립, 유로채권 발행, 재정통합 등 중장기 방안과 금융거래세 신설 등의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선 이런 중장기 방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그치고 구체적인 논의는 오는 12월 있을 하반기 정례 정상회담에서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브뤼셀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