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2인자' 고모부…고모도 신권부 핵심
최룡해·김원홍 등 `장성택 인맥' 부상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권부의 권력지형에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권력지도가 그려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과 서른도 안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약한 권력 장악력이 북한 체제를 장성택에게 상당 부분 의존토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성택은 김 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에서 회복한 이후 북한 권부에서 사실상 2인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김 위원장 생전에 그는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쌓은 영향력과 노하우를 인정받아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으로 자리를 잡은 터라 김 위원장 사후에도 그 위상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의 득세라는 추정은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약진에서도 뒷받침된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 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는 오빠인 김 위원장의 와병 직후 공식석상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비서 자리를 꿰찼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공업부와 경제정책검열부 등 노동당의 전문부서를 오간 김경희는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당 비서로 정치적 위상이 격상된 셈이다.

김경희가 맡은 업무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그동안 주로 맡아온 경제 쪽보다는 조직 담당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업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체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또다른 인물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다.

군 경력이 전무한 최룡해는 2010년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대장 계급장을 달더니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차수로 승진하면서 북한내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군 총정치국장에 발탁됐다.

군 총정치국장이 최고사령관 다음의 군부 서열 2위라는 점에서 민간에서 활동해온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기용은 김정은 체제의 최대 파격인사로 꼽힌다.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기용은 그가 장성택과 동고동락한 사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재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 들어가 위원장에 오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장성택 밑에서 일하며 부침을 함께했다.

그는 장성택이 2004년 초 '분파행위' 혐의로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때 함께 공직에서 밀려났다가 2005년 말 장성택이 업무정지에서 해제돼 당 행정부장으로 복귀하자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돌아와 `장성택의 사람'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군부에 영향력이 부족한 장성택 입장에서는 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를 통해 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만 보도하던 북한 매체들이 내각총리에 이어 최근에 총정치국장 현지지도까지 별도로 전하는 것도 최룡해의 정치적 위상이 어느정도 높아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룡해의 부친은 항일무장투쟁시절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 주석과 생사를 함께 했던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으로, 최현은 지금도 북한 군부에서는 '최고의 빨치산'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최룡해가 김정은 체제에서 예고된 실세였다면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은 새로 떠오른 실세로 분류된다.

김원홍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군 보위사령관을 지내다 장성택의 천거로 2010년 2월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7년 리진수 사망 이후 27년간 공석이던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올라 공안통치를 근간으로 하는 북한사회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김원홍의 부상은 우동측 제1부부장, 김창섭 정치국장 등 보위부 기존 고위인사들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어 더 주목된다.

우동측은 김 위원장 영결식 때 영구차를 호위한 8인 중 한 명에 포함될 정도로 시선을 끌었지만 김 1위원장의 후계자 내정 이후 내내 장성택을 견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동측 등의 몰락을 감안하면 김원홍 등을 내세운 장성택의 공안기구 장악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룡해가 선군정치에서, 김원홍이 공안통치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실세라면 북한의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데서는 박봉주 당 경공업 부장의 부상을 눈여겨볼 만하다.

1990년대 당 경제정책검열부와 경공업부에서 김경희를 보좌한 박봉주는 2002년 경제시찰단으로 장성택과 함께 남한을 다녀가기도 했다.

이어 2003년 내각총리에 올라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주도했지만 군부와 당내 보수세력의 저항으로 2007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그는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된 뒤 다시 2년 만에 부장에 올랐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향후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