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실험 실패"…"장마당 등 확산 효과"

북한이 2002년 야심 차게 단행한 7·1경제관리개선 조치가 1일로 시행 된 지 만 10년이 됐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사회의 공적 배급체계가 붕괴되자 북한 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자리잡은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기업의 자율권 확대,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골자로 7·1경제관리개선 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2002년 9월에는 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 발표 등 2005년까지 일련의 후속 조치로 7·1조치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7·1조치를 주도한 박봉주 내각총리가 2007년 해임되고 군과 노동당의 보수적 입김이 커지면서 이 조치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일부 전문가는 시장시스템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7·1조치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성과가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유명무실해진 7·1 조치 = 7·1조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10월3일 당과 내각 간부를 모아 놓고 행한 `10·3담화'에서 시작됐다.

담화는 임금의 평균주의 철폐 등 경제개혁 원칙을 제시했고 이는 그 이듬해 가격 및 생활비 현실화, 독립채산제 도입, 분조관리제 중심의 협동농장 운영을 골자로 하는 7·1조치로 귀결됐다.

그러나 2005년 말부터 정책의 보수화 경향 속에 경제개혁은 퇴행 조짐을 보였다.

개혁 확대로 사회·정치적 이완 조짐 등이 나타나자 북한 당국이 체제불안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통제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5년을 기점으로 양곡전매제 시행(2005년 10월), 부동산 전면 실사(2006년 4월), 개인 서비스업 실태조사(2007년 초), 종합시장 통제 개시(2007년 10월), 종합시장 개장일수 및 판매품목 제한(2008년 10월), 종합시장 공간 축소(2009년 6월) 등 반시장적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2009년 11월 단행된 화폐개혁은 7·1조치의 최소한의 성과까지 뒤집는 반시장 조치의 결정판이었다.

화폐개혁의 타깃은 상거래로 큰 돈을 번 중소 상공인이었다는 점에서 '7·1조치 이전으로의 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화폐개혁은 반시장, 반자본주의적 독소를 갖고 있다"며 북한의 경제개혁이 물건너갔거나 7·1조치가 유명무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경제 이해 제고 등 긍정적 평가도 = 일각에서는 7·1조치가 북한경제 정상화와 주민생활 향상에 일부 기여했고 이를 통해 북한 내에도 일부 개혁·개방 세력이 형성됐다며 긍정적 평가도 내놓고 있다.

북한의 대외여건이 개선된다면 이들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7·1조치도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적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7·1조치가 군부 반발로 계획경제 강화 쪽으로 나가는 등 실패했지만 장마당 등 시장경제 요소를 전반적으로 확산시킨 효과는 있었다"며 "김정은이 박봉주 당 경공업 부장을 내세워 7·1조치를 하나의 모델로 삼아 이르면 연내에 새로운 개혁을 추진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봉주는 보수세력의 저항으로 2007년 내각 총리에서 밀려났지만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됐으며 올해 당 경공업부장으로 승진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7·1조치가 북한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지만 기업소 등 분야별 자율권 확대와 인센티브제 실시 등 부분적인 시장경제 실험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했다.

양 교수는 "개혁정책이 성공하려면 법, 제도 완비 등 내부요인 외에 대외관계 개선 등 외부 환경적 요소도 중요하다는 점을 북한이 되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