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공기업이 달라지고 있다. 무사안일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공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경영 성과가 나쁘면 매년 실시되는 공기업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임직원의 성과급도 깎인다. 눈에 불을 켜고 혁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도로공사가 대표적이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불법 노점상과의 30년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무단 점거한 불법 노점상은 도로공사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불법 노점상에 대한 단순 단속에서 벗어나 휴게소 안에 신개념 잡화점 ‘하이숍’을 열고 이들의 입점을 유도한 것. 현재 전국 164개 하이숍 매장의 매출은 연간 400억원을 넘는다. 휴게소 주변이 깔끔해지고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공기업 경영 혁신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최고경영자(CEO) 주도형이다. 상명하달식 조직문화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 CEO가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면 일사불란하게 성과를 이끌어내는 장점을 발휘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글로벌 한전’을 표방한다. 김중겸 한전 사장은 틈만 나면 “해외로 눈을 돌려라”고 직원들을 다그친다. 국내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는 메시지다.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2008년 취임 이후 조직을 확 바꿔놨다. 과거 기획 파트-지원 파트로 나뉘었던 조직을 사업 중심으로 재편한 것. 주요 보직에 공모제를 도입했고 소방대 업무 등 본업과 상관없는 일은 과감히 아웃소싱했다.

둘째, 목표 지향적이다. 혁신의 성공 여부는 대개 목표 달성 여부로 평가된다. 수출입은행은 현재 60조원가량인 여신 규모를 2020년까지 150조원으로 끌어올려 세계 3위 수출신용기관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셋째, 원가 절감 등 경영 효율성 향상에 초점이 맞춰진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선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한전의 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과 한국서부발전 등은 소사장제를 채택하고 있다. 남동발전은 팀 파트 사업소 등의 2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소사장제를 도입, 각 부문에서 강력한 원가 절감을 유도하고 있다.

이 같은 경영 혁신은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국내 공기업의 경쟁력은 단연 돋보인다. 한전의 송배전 효율성을 보자. 지난해 96.3%로 미국(94.2%) 일본(95.2%) 독일(94.6%) 등 선진국보다 높다. 송배전 효율성은 송전 전력량 대비 판매 전력량으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가정에 보내지는 과정에서 전력 누수가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단가도 한국이 당 670.52달러로 일본(765.84달러)보다 저렴하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 LNG 수입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구매력은 둘 다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한국이 일본보다 싼 가격에 수입하는 것은 그만큼 가스공사의 경쟁력이 높다는 의미다. 낮은 도입 단가는 소비자 이익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가스요금은 ㎥당 847원으로 일본(2199원)의 38%에 불과하다.

고속철도의 효율성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고속철도를 비교적 늦게 도입했지만 정시 운행률은 지난해 99.8%로, 우리에게 고속철도 기술을 전수한 프랑스(78.2%)를 압도한다. 대만(99.2%) 체코(94.2%) 이탈리아(90.8%)보다도 높다.

공기업들의 몸집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27개 공기업의 매출은 128조5868억원으로 2010년 115조170억원보다 11.8% 늘었다.

하지만 과제도 여전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빚이다. 공기업들이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할 일을 대신 떠맡는 경우가 늘면서 빚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27개 공기업의 총 부채는 328조4403억원으로 2010년 290조9028억원보다 12.9% 늘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174.3%에서 195.3%로 뛰었다. ‘부채비율 200%’는 민간 기업에선 위험신호로 통한다. 자칫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돈을 빌리는 비용이 높아져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매출은 늘고 있지만 수익성이 나빠지는 점도 문제다. 부채 증가와 공공요금 인상이 쉽지 않은 경영 환경 등으로 27개 공기업은 지난해 539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0년 2조3347억원이던 순이익이 1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한전이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3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순손실을 낸 게 결정적이었다.

물론 공기업을 민간 기업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때로는 ‘이익’보다 ‘국민 편익’이 우선시될 때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영 성과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방만 경영’ ‘무사 안일’이란 과거로 돌아가고 그 폐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메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지금 공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