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原電 1호기 '운명의 시간'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놓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벼랑끝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안전성을 공인받은 만큼 재가동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해당 지자체인 부산시는 100%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가동은 안 된다며 버티고 있다. 여기에 야당 의원들까지 가세, 고리1호기 폐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전력수급이 눈에 띄게 빠듯해진 가운데 칼자루를 쥔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4일 재가동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안전하다” vs “못 믿겠다”

고리原電 1호기 '운명의 시간'
고리1호기는 1977년 6월 임계(핵연료가 처음 열을 발생시킨 시점) 이후 35년이 지난 국내 최고령 원전이다. 2007년 30년의 설계수명을 다 채웠지만 주민합의를 거쳐 이듬해 운전 기한이 2017년으로 10년 연장됐다. 고리1호기의 안전성 논란은 지난 3월 비상발전기 고장에 따른 전력공급 중단 및 사고 은폐가 뒤늦게 불거지면서 촉발됐다. 원안위는 즉시 가동중지 명령을 내리고 IAEA 특별점검 및 자체 점검에 나섰다.

IAEA는 지난달 11일 고리1호기 비상발전 시스템 및 전력계통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특별점검 결과를 발표했지만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믿을 수 없다”며 아예 발전소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도 “IAEA의 발표 내용은 구체적인 점검 결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안전이 확보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고리1호기 발전용량은 59만㎾로 상대적으로 작지만 올 여름철 전력수급 상황을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값싼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이 멈추면 한국전력의 전력 구입 비용이 높아지는 등 연쇄 파급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전 세계 원전의 40%

고리1호기는 향후 30년 이상 가동한 노후원전 처리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전 확대정책을 고수하는 정부와 원전 운영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 및 야당이 고리1호기 재가동 여부에 관심을 쏟는 또 다른 이유다.

현재 월성1호기(1982년 11월 임계)는 오는 11월, 고리2호기(1983년 4월)는 내년 4월 각각 설계수명 30년의 시한을 채우게 된다. 정부는 이번 고리1호기 안전성 논란이 원전 전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지경부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35기 원전 가운데 30년이 지난 원전은 전체의 41%인 178기에 달한다. 40년 이상 가동 중인 원전도 32기(7.4%)나 된다. 고리1호기도 첫 가동 후 총 108건의 고장·정지 사건이 있었지만 2005년 이후에는 1건에 그칠 정도로 안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수급 구조를 감안할 때 원전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는 만성적인 전력수급 불안과 국가 재정 부담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도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버몬트 양키원전에 대한 가동 연장을 허가했다”며 “단지 오래됐다고 안전하지 않다고 결론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정호/조미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