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 23인이 오지에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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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오지 기행' 출간
‘강원도의 산들은 높이를 버리고 초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초록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무들은 밤새 초록을 계곡으로 방류합니다/열목어들이 쿵쾅거리는 물 속에서 눈을 크게 뜨는 아침/젖은 이부자리 개키며 바라보는 앞산 허리에는 비안개가 자욱합니다’ (이문재, ‘서신’ 부분)
23명의 시인들이 ‘오지’로 떠났다. 최근 나온 《시인의 오지 기행-고요로 들다》(문학세계사)에서 이문재 손택수 박후기 등 한국시단을 이끌어가는 젊은 시인들이 파주 민통선에서 제주도까지, 국토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오지의 문을 열었다. 그들이 가기 전엔 오지였을지 몰라도 시인의 미문(美文)과 만난 후에는 ‘도원’이 되고 ‘영혼의 거처’가 된다.
오지라면 강원도가 첫손으로 꼽힌다. 시인 박후기 씨는 홍천에 있는 살둔마을을 다녀왔다. 추월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만 같은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길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마음 또한 더불어 편안해진다고. 그는 “쉽사리 타인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나의 내면도 오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한다”고 했다.
박씨는 15년 전만 해도 살둔은 산속의 섬이었다고 회상한다. 소양강물이 새을(乙)자로 물돌이동을 만들어 가둔 동네가 이곳이다. 나룻배가 아니면 외지에 나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뚫리고 강 위에 다리가 놓였다. 그래도 여전히 살둔은 아름다운 강마을이다.
시인 손택수 씨는 남도의 섬으로 간다. 목포항을 떠난 여객선이 신안군 다도해 지역을 통과한다. ‘물 속으로 뛰어든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숨을 토하듯 파─ 물 위로 머리를 내민 바다’를 지나 가거도에서 만재도까지 다녀왔다.
‘배가 해를 안고 바다를 다린다/꾸욱꾸욱 주름을 펴며 수평선을 건너간다/복화술사처럼 한일자로 입을 다문 수평선/저 과묵 속엔 얼마나 많은 파란만장이/물결치고 있다는 말인가’ (손택수, ‘수평선’ 부분)
손씨는 섬을 향한 꿈은 별을 향한 꿈과 같다고 했다. 별이 수직상승을 통해 닿을 수 있는 섬이라면, 섬은 끝없는 수평이동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별이라는 것. 후박나무 향과 초록의 이파리들로 가득한 가거도는 걷기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만재도는 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고 한다.
시인들은 이 밖에도 강원 경상 전라 충청의 많은 오지를 독자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포크레인이 아닌 아름다운 언어로 하는 개발인 셈이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나라가 좀 더 넓고 깊어진 느낌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