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통상적인 감정이다. 때로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싶을 정도로 밉다는 격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격정의 감정은 대부분 경우에 지나친 것이다. 미워함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거둬들이는 것은 사랑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 못지않게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감정의 과잉은 그와 같은 감정 뒤에 존재하는 진심으로 아끼는 대상을 해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로 간과하게 된다.

경제에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그르치는 경제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시장을 지금과 같이 망가뜨린 것은 대내외적인 상황이 큰 역할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우리의 감정이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세살이를 하면서 겪었던 설움은 집의 소유에 지나치게 특별한 감정적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주택가격 상승은 우리에게 그른 것이라는 암묵적인 감정이 형성되기에 이르렀으며 위정자들에게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하나의 지상명령이 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부동산시장을 얽어매는 수많은 규제, 소위 말하는 대못을 박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부동산가격 하향 안정화라는 구호에 따라 여러 정책을 내놓은 일도 결국 감정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 부작용은 적어도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자산 가격을 정책당국이 하향 안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 원리를 참으로 몰이해한 결과일 것이다. 자산 가격은 정부 정책에도 반응하지만 더 크게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에 의존한다. 정부가 자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기로 하고 그를 위한 정책과 규제를 내놓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은 가격의 더 큰 하락을 예상하고 수요자들은 가격이 더 하락할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그 결과 자산 가격은 많은 경우 정부가 의도한 이상으로 더 크게 하락한다.

이명박 정부의 적지 않은 정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를 내세운 것은 다분히 인기영합적인 측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의적절하지도 않았다. 2008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과정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와중이라 내버려 둬도 하락할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겠다고 했으니 정부가 이 경제를 파탄 내겠다고 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인기영합적인 감정에는 충실했으나 시장 원리에 대한 몰이해만 드러낸 셈이다. 지금 우리의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경제’와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화’가 결합돼 묘한 뉘앙스를 갖는 용어인 것 같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일 것이다. 재벌 또한 우리에게는 특별한 감정적 내용을 갖는 대상이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재벌의 역할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러나 재벌의 그와 같은 성장은 정책적인 특혜와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재벌의 행태는 무분별한 사업영역을 포함해 개혁돼 마땅한 측면이 많음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재벌이 생산하는 독과점의 시장체제는 재벌 자신에게도, 이 나라에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제 재벌의 지나친 확대가 경제에 부담이 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감정에 치우쳐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서민의 눈으로 보면 재벌과 그 소유자들이 하는 행태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지만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차제에 재벌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리해 국가경제와 시장체제를 합리화할 때인 것이다.

거의 모든 위정자들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흔히 재벌에 대한 감정만 보이고 재벌과 알게 모르게 얽혀 영위되는 이 나라의 경제현실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은 보기 어렵다. 재벌개혁은 감정의 개혁이기보다는 결국 제도의 개혁이어야만 하고 논의 과정에서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제도를 만든다는 사명의식이 앞서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 과정에서 좀더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재벌이라기보다는 이 나라와 다수 국민인 것이다.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