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공정위가 말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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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하이마트가 롯데로 넘어갔다. 웅진코웨이는 재계 서열 8위 GS로의 매각이 유력시된다. 시장은 ‘주인을 제대로 찾았다’며 반긴다. 앞서 하이닉스반도체는 SK에, 대한통운은 CJ로 각각 팔렸다. 대기업과 또 다른 대기업 간 결합이다. 다른 대안은 없었을까. 현실적으로 찾아내기가 어렵다. 수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때문이다. 재무적 투자자는 어떨까. 자금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정거장’이다. 또다시 전략적 투자자를 찾아나서게 돼 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수·합병(M&A) 와중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사실,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난타 당하는 글로벌 성공
무심하던 정부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는 때가 있다. 매년 한 차례씩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이다. 으레 ‘경제력 집중’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오른다. 직접 기업결합요건을 심사하고 승인한 공정위도 갑자기 몰랐던 사실을 안 것처럼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를 쏟아낸다. 여기에 좌파 성향의 언론·시민단체들이 가세하면 정치권까지는 일사천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랬다. 상위 5대그룹의 자산(754조원)이 정부자산(1523조원)의 절반에 육박하게 됐다며 이대로 가다간 재벌의 힘이 국가보다 더 세질 것이라는 엄포가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요즘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구호 만큼이나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재벌체제’가 못마땅하다는 것인지, ‘경제력 집중’이 잘못됐다는 건지 논의 방향에 따라 입맛대로 갖다 붙인다.
이들이 M&A말고도 하지 않는 얘기는 또 있다. 성장과 성공이다. 삼성은 최근 십수년 사이에 이렇다 할 만한 국내 기업들을 인수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자산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 사업의 성공으로 기업 확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덩치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 M&A도 하지 말고 성장도 하지 말란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상식이 안 통한다
10대그룹 총수들의 내부 지분율이 줄어들었다는 공정위 발표에도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가 배제돼 있다. 공정위는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대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민주적 지배구조’를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지분이 왜 줄어드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굳이 외면하는 느낌이다.
일부러 자신의 지분을 줄이는 총수가 있겠는가. 가뜩이나 지분이 낮아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인 지분은 사업이 성공할수록, 경영영토가 넓어질수록 낮아지게 돼 있다. 예를 들어 모토로라를 인수한 구글 경영진들의 지분은 그룹 전체 기준으로 종전보다 작아졌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계열사들을 통한 내부지분 확대’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것 역시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총수 지분이 낮아지면 계열사 지분이라도 늘려야 한다. 그래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본 조달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경제적 자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요즘 정부나 정치권이 하는 얘기는 딱 하나다. “재벌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디 다른 대안을 내놔보시든가. 당장 하이마트와 웅진코웨이는 어쩌면 좋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는 어쩌란 말인가.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정부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수·합병(M&A) 와중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사실,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난타 당하는 글로벌 성공
무심하던 정부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는 때가 있다. 매년 한 차례씩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이다. 으레 ‘경제력 집중’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오른다. 직접 기업결합요건을 심사하고 승인한 공정위도 갑자기 몰랐던 사실을 안 것처럼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를 쏟아낸다. 여기에 좌파 성향의 언론·시민단체들이 가세하면 정치권까지는 일사천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랬다. 상위 5대그룹의 자산(754조원)이 정부자산(1523조원)의 절반에 육박하게 됐다며 이대로 가다간 재벌의 힘이 국가보다 더 세질 것이라는 엄포가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요즘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구호 만큼이나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재벌체제’가 못마땅하다는 것인지, ‘경제력 집중’이 잘못됐다는 건지 논의 방향에 따라 입맛대로 갖다 붙인다.
이들이 M&A말고도 하지 않는 얘기는 또 있다. 성장과 성공이다. 삼성은 최근 십수년 사이에 이렇다 할 만한 국내 기업들을 인수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자산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 사업의 성공으로 기업 확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덩치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 M&A도 하지 말고 성장도 하지 말란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상식이 안 통한다
10대그룹 총수들의 내부 지분율이 줄어들었다는 공정위 발표에도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가 배제돼 있다. 공정위는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대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민주적 지배구조’를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지분이 왜 줄어드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굳이 외면하는 느낌이다.
일부러 자신의 지분을 줄이는 총수가 있겠는가. 가뜩이나 지분이 낮아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인 지분은 사업이 성공할수록, 경영영토가 넓어질수록 낮아지게 돼 있다. 예를 들어 모토로라를 인수한 구글 경영진들의 지분은 그룹 전체 기준으로 종전보다 작아졌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계열사들을 통한 내부지분 확대’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것 역시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총수 지분이 낮아지면 계열사 지분이라도 늘려야 한다. 그래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본 조달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경제적 자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요즘 정부나 정치권이 하는 얘기는 딱 하나다. “재벌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디 다른 대안을 내놔보시든가. 당장 하이마트와 웅진코웨이는 어쩌면 좋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는 어쩌란 말인가.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