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경영상]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2년 만에 체질개선…종합 에너지기업으로 '제2 도약'
2010년 8월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된 권오갑 사장은 출근 첫날 취임식을 갖지 않았다. 대신 “현대오일뱅크를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만들자”는 이메일로 직원들을 다독였다.

현대오일뱅크는 현대그룹이 1993년 정유업계 진출을 선언하며 당시 극동정유를 인수해 만든 회사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2001년 유동성 위기를 맞아 아부다비 IPIC에 경영권을 넘겼다. 이후 긴 법정공방 끝에 10년 만에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인수했다. 현대 깃발을 다시 단 이 회사의 제2의 도약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권 사장이다.

그는 “현대그룹에 입사해 현대중공업에서만 33년간 근무했고 2010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다시 인수하면서 첫 사장으로 발령받았다”며 “우리 임직원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고 당당한 자부심 속에서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취임 당시를 떠올렸다.

권 사장은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IPIC 체제 아래에서 지지부진하던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석유정제뿐 아니라 석유화학, 윤활기유, 유류저장 사업 등 다양한 신사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끌었다. 부임 이듬해인 지난해엔 하루 5만2000배럴의 제2 고도화 설비를 1년6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상업 가동했다. 이를 통해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높은 30.8%의 고도화율을 기록했다.

권 사장은 전통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크게 변하지 않는 주유소 내수시장에서도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현대오일뱅크는 K리그 타이틀 스폰서, 국내 최대 규모 드림콘서트 후원, 다양한 카드 제휴 등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뿐만 아니라 주유소 운영자 해외 간담회, 고객자문단 운영 등으로 현대오일뱅크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이에 힘입어 수십년간 18%대에 머물던 시장 점유율은 올해 초 22%대까지 상승했다.

현대오일뱅크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 코스모석유와의 합작으로 착수한 BTX 공장 증설은 올해 말 완공된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는 연산 145만t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정유사 쉘과 손잡고 합작법인 ‘현대쉘베이스오일’을 통해 윤활유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울산신항에 대규모 탱크를 설치하는 상업용 유류 저장사업도 정유사 최초로 진출, 현재 70%가 넘는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사업 구조 다각화와 함께 권 사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해외 시장 개척과 연구·개발(R&D) 강화다. 이를 위해 현대오일뱅크는 기존 싱가포르 법인 외에 지난해 중국 상하이와 두바이에 지사를 신설했고, 올 들어 베트남 하노이에도 지사를 추가했다. 권 사장은 “미래 성장 사업으로는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석유화학 원료를 이용한 프로필렌과 부틸렌 사업, 옥소알코올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강한 카리스마로 사업을 이끌지만 내부적으로는 세심한 배려로 직원들을 챙기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월급 봉투를 부활시켜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대리, 과장급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30여명씩 해외에 파견해 견문도 넓히도록 하고 있다. “회사는 돈만 버는 곳이 아니고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보내도록 해주느냐도 회사의 큰 책임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9월부터 임직원들이 급여 1%를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급여 1% 기부와 전 직원 금연 선언엔 안정된 노사관계도 한몫했다. 권 사장은 김태경 노조위원장과 격의 없이 만나 투명하고 정직한 회사 운영과 임직원 복지향상에 노력할 것을 약속했고 노조는 2년 연속 임금위임과 무파업 선언으로 화답했다.

권 사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늘 강조했던 것이 ‘일 잘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일터’”라고 말했다. 다음달이면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한 지 2년이 된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는 창사 이래 최대인 6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신용등급은 A에서 AA-로 두 단계 상승했다. ‘2년 전’ 권 사장의 다짐은 ‘오늘’ 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의 자부심이 됐다.


◆ 권오갑 사장은…
직원 눈높이 맞추는 경영인…매주 금요일 대화시간 마련 협력업체 '복지'까지 챙겨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매주 화요일 새벽 5시면 서울에서 대산공장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싣는다. 점심 때는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판을 들고 줄을 선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직원들과 ‘경영진과의 대화’ 자리를 갖는다. 그는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늘 신경을 쓴다.

권 사장은 판교 부농(富農)집안 막내 아들로 자랐다. 어린 시절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과수원 일꾼들과 함께 밥을 먹고 부대끼며 생활했다. 크고 좋은 과일보다 작고 흠이 있는 것을 먼저 집어드는 건 그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외대 포르투갈어학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1990년부터는 현대학원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울산대, 울산과학대, 현대중·고교, 현대청운중, 현대정보과학고의 축구부 창단을 주도했다. 1997년 현대중공업 경영지원부와 영업총괄 등을 거쳐 200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 품에 다시 안긴 현대오일뱅크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사장이 돼서도 현장에서 직원들을 스스럼 없이 대한다. 대산공장에 ‘한마음관’을 만들어 협력업체 직원들의 후생공간까지 챙기는 세심함도 여전하다. 사장 전용차로 나온 에쿠스를 직원들의 결혼식과 가족의 장례용 차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줬다. 본인 스스로 일일 주유원으로 나서면서 모든 임직원이 직영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연간 20시간 이상 근무하도록 했다. 임직원이 일하고 받은 시급은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