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불법 행위로 시정부가 잃은 돈은 시민들을 위해 휴식 공간을 만들고 경찰관들에게 월급을 줄 돈이었다. 금융위기 당시 세수가 줄면서 공공서비스를 줄이고 공무원들을 해고해야 했다. 돈이 가장 필요하던 시기에 엉뚱한 곳에서 손실을 본 셈이다.”(조지 닐슨 미국 볼티모어 시정부 변호사)

영국 바클레이즈은행 등 글로벌 은행들의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사태’가 미국에서 무더기 소송 사태로 비화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헤지펀드·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과 주정부·시정부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리보 조작 때문에 금융거래에서 손실을 입었다”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리보 조작 사태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리보 금리 결정에 참여하는 은행들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게 보고한 사건을 말한다. 리보는 전 세계 금리 파생상품 및 대출거래의 기준금리로 사용된다.

○“금리스와프 거래로 대규모 손실”

미국 지자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선 곳은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시정부다. 연방법원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건체이스, 도이체방크, 바클레이즈 등을 상대로 제일 먼저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나소카운티와 매사추세츠 주정부도 리보 조작에 따른 손실 규모를 집계하면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문제 삼고 있는 금융 거래는 채권을 발행할 때 은행들과 맺는 ‘금리스와프’다. 지자체들은 채권을 발행한 후 금리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변동금리부 채무를 은행들의 고정금리 채무와 맞바꾸는 스와프 거래를 맺어왔다. 시장 금리가 낮아지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지자체들은 은행들이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공무원들에게 수십억달러 규모의 금리스와프 상품을 판 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피터 사피로 스와프파이낸셜그룹 이사는 “만약 한 시정부가 10억달러어치 채무에 대한 금리스와프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리보가 연 0.30%포인트 낮아지면 연간 3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피해 입증하기 쉽지 않아

기관투자가들도 소송전에 가담했다. 헤지펀드와 연기금 등은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이뤄지는 선물 거래 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금리 상승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체결하는 거래여서 기준금리인 리보가 낮아질 경우 거래 손실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투자회사인 찰스슈워브는 2010년 자사 뮤추얼펀드들이 이 같은 거래로 손해를 봤다며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도 “리보 조작의 피해를 면밀히 계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펀드들이 피해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우선 은행들이 금융위기 내내 리보를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는지부터 증명해야 한다. 또 리보 인하가 해당 거래의 금리에 실제로 반영됐는지, 자신들이 거래한 특정 은행이 조작에 가담했는지도 입증해야 한다.

대럴 더피 스탠퍼드대 교수는 “소송이 장기화되면 입증 여부와 관계없이 은행들이 먼저 합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합의금으로 수백억달러를 지급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