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앞다퉈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다짐은 한낱 신기루가 됐다.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자진 사퇴했다. 이에 따라 19대 국회는 개원한 지 단 열흘 만에 다시 공전할 위기에 처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12일 그 책임을 새누리당에 돌리며 맹공을 퍼부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였다”며 “자기들이 그렇게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큰소리 친 게 한 달 만에 쇼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인사청문회, 내곡동 사저 특검법,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 등 7월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위원도 임명하지 않고 미루더니 짜여진 각본대로 이때를 기다린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과연 이 같은 비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정 의원 체포 동의안의 표결 결과를 보면 투표에 참여한 271명 중 찬성 표를 던진 의원은 7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반대·기권·무효는 197명에 달했다. 이날 참석한 새누리당·통합진보당·선진통일당·무소속 의원을 합쳐 160명가량이었음을 고려할 때 민주당에서도 37명 이상의 반대·기권·무효표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검찰조사를 앞둔 박 원내대표를 의식해 전략적 반대표를 던졌다는 지적도 있다. 박 원내대표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면 새누리당에도 봐달라고 할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특권 지키기에 동참한 셈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에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면책·불체포 특권 폐지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고 했다면 여야 모두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했어야 했다”며 “그러나 여도 야도 의원들의 자유 투표에 맡김으로써 양당 지도부 모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만 열면 ‘쇄신’을 외치면서도 특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야 의원들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의원연금제와 겸직 금지 등 여야가 앞다퉈 내놨던 다른 쇄신안들도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중요한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이 발목 잡혀 한동안 멈춰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