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레이스가 시작됐다. 모처럼 길었던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후보의 대중연설을 들으며 이제 본격적인 경주가 시작됐음을 실감한다. 사실 이런 표현은 진작 출마를 선언한 다른 후보들에겐 부당한 일이다. 다른 주자들에 비해 단연 높은 지지율을 구가해온 덕인지, 아니면 언론의 은근한 우대 분위기였는지 그의 출정식이 언론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확연히 더 오래 더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는 점은 불공정시비를 낳기에 족하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또 어느 주자·후보도 새로운 정치·변화를 말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하지만 가장 바뀌지 않고 구태의연한 악순환만 거듭해 온 것이 한국 정치였다. 정부를 믿고 기대했다가 번번이 실망하곤 했던 사람들이 여야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염원해온 한 가지,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진정한 변화, 환골탈태한 새로운 정치였다.

새로운 정치·변화란 무엇인가. 새로운 정치라면 과연 무엇이 새로워야 한다는 말인가. 앞으로 5년 우리는 어떤 나라, 어떤 정부를 가질 것인지를 선택하는데, 관건은 그 5년을 누구에게 맡겨야 나라가 편안하고 발전하며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까 하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기대와 요구가 결국 낡은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정치철학과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기대는 실현될 수 있을까.

정책과 사람으로 따진다면 답은 답답하고 암울하다. 우선 정책을 보면 차별화가 쉽지 않다. 너나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운다. 박근혜 후보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국민행복 3대 과제로 천명한 경제민주화와 복지 두 가지는 거의 모든 주자들이 공통적으로 표방해온 것이다. 물론 후보마다 속내는 다를 터이고, 구체적인 정책이나 현안에 들어가면 그 색깔과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현 시점에서 사람들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후보들 사이에 이 놀라운 공분모가 출현한 데 대해 어리둥절하다.

사실 경제민주화의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1 대 99 사회’나 월스트리트 점령론이 상징하듯 복지와 더불어 시대적 화두로 대두됐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결국 차이는 제로섬 현실에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또 이 문제를 착실히 검증하는 것이 대선토론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중들에겐 과연 뭐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이 쉽지 않고 과거와 별반 다름없는 허무한 공약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사람 문제로 돌아간다. 누구에게 맡겨야 그래도 좀 나을까. 안심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한 번 더 속을지라도 누구에게 맡겨야 좋을지 고민한다. 사람들 뇌리에는 대선후보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내세웠던 숱한 장밋빛 공약보다 임기 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인척·측근 비리가 더 뚜렷이 각인돼 있다. 또 한 번 속는 심정으로 선택을 하거나 어디 새 사람이 없는지 실낱같은 기대를 추스른다. 둘러보니 대선주자 면면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우리나라엔 왜 미국의 오바마나 프랑스의 올랑드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는지 묻는다. 더러 중앙 정치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도 눈에 띄지만 기성 정당에 갇혀 있는 등 아직 그리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장외에 머물러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바로 새 인물에 대한 염원을 반영하는 하나의 극적인 사례다. 새 인물을 수혈받거나 키우지 못해 심근경색을 겪는 정당들 모습에 기대를 접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안철수란 이름 석 자는 여전히 그래도 더 나은 대안이다. 그런데도 특히 야당 일각에서 ‘이미 때를 놓쳤다’거나 ‘무임승차를 노린다’ ‘정치적으로 미숙하다’는 등 마치 고대하다 지치기나 한 듯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혹 마지막 카드를 버려도 좋다는 건지 의아한 품세이다.

바야흐로 정치 성수기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정치·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여망을 누가 채워줄 것인가. 혈투가 벌어질 것이다. 정당 간 대결뿐 아니라 정당과 ‘비정당’의 승부가 성사될 수도 있기에 한국 정치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