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폐지인가, 국공립대 통폐합인가. 민주통합당이 뜨거운 논란을 몰고왔다. 하지만 여론은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민주당은 즉각 국공립대 통폐합이 서울대 폐지로 잘못 전달됐다고 항변했다. 지방에 여러 개의 서울대를 세우는 ‘상향 평준화’라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국공립대 통폐합은 포장일 뿐 서울대 폐지를 본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대 폐지가 만병통치약?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민주당의 서울대 도박
방향이 맞다면, 또 실현 가능성이 있다면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그 이상도 못할 게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 서울대 폐지로 기대한다는 효과들이다. 대학 서열주의 해소, 학벌주의 타파, 사교육 해결, 지역 균형 발전, 대학경쟁력 강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쯤되면 한국 교육과 지방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다. 민주당 말대로만 된다면 찬성표를 던지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얼핏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렇게 좋은 걸 역대 정권들은 왜 못했을까.

한 가지 카드로 수많은 정책 목표(기대효과)를 달성할 그런 기막힌 수라면 또 모르겠다. 틴버겐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목표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 되기 딱 좋다. 목표 간 충돌도 피하기 어렵다. 당장 대학 서열주의 해소와 대학경쟁력 강화가 어떻게 양립하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민주당이 상향 평준화라고 둘러대는 건 그야말로 말장난일 뿐이다. 이런 다목적, 다차원 함수 문제는 아예 ‘해(解)’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사 해가 있다 해도 어느 정도 목표치를 달성할지, 또 그 가능성이 얼마일지는 또 다른 얘기다. 목표별로 하나씩 연관지어 보라. 서울대 폐지와 대학 서열주의 해소, 서울대 폐지와 학벌주의 타파, 서울대 폐지와 사교육 해결, 서울대 폐지와 지역 균형 발전, 서울대 폐지와 대학경쟁력 강화 등 하나하나가 엄청난 논란거리다. 그럴듯한 인과관계로 엮으면 인지적 편안함을 느끼는 게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오기 일쑤다. 하물며 이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민주당의 도박이다. 언제부턴가 교육정책, 대학정책이 도박판이 되고 말았다. 여론이 불리하자 민주당의 우군들이 총출동했다. 경기도 교육감은 초·중등 교육 정상화를 말하며 거들고 나섰다. 아예 학교 폭력까지 서울대 탓이라는 분위기다. 민주화 이름을 단 단체 소속 일부 서울대 교수들도 가세했다. 대학경쟁력을 높이려 서울대를 법인화하자고 했을 때 죽어라 반대만 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식이면 말이 국공립대 통폐합이지 사람 하나 자르지 못하는 거대 공룡의 탄생이 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은 재정을 퍼붓겠다고 한다. 어차피 반값등록금 실현도 약속한 마당이다. 결국 참여정부가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마다 n분의 1 나눠주기가 아예 제도적 틀로 고착화될 게 뻔하다. 무슨 경쟁이 있고, 무슨 혁신이 일어나겠나.

서울대는 왜 침묵하나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민주당의 서울대 도박
민주당만 탓할 것도 아니다. 서울대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왜 심심하면 서울대 폐지론이 등장하게 됐는지.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다고 그들 전부를 서울대 지지자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서울대 스스로 변화를 선도한 적이 있었던가. 국민을 감동시킨 적이 있었던가. 서울대는 민주당에 말려들어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해 침묵하는 모양이다. 할 말 있으면 당당하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과감한 자기 혁신에 나서든지. 서울대를 폐지한다고 해도 아무 할 말 없는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