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북한 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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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북한의 ‘장마당(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각양각색이다. 식품과 옷이 많지만 휴대폰 TV MP3플레이어 같은 전자제품, 커피믹스도 팔린다. 심지어 음란 동영상까지 구할 수 있단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한국 오락물이다. 영화에서부터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가수들의 노래까지 은밀하게 거래된다. ‘남조선 날라리풍’으로 불리는 한류는 아무리 막아도 자꾸 퍼지고 있다.
‘한류, 통일의 바람’이란 책을 얼마 전 펴낸 부부 북한학자 강동완·박정란 박사가 탈북자 10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19%가 한국 영상물을 ‘매일 접한다’고 답했다. ‘1주일에 한 번’도 22.8%나 됐고 ‘한 달에 한두 번’이 26.6%, ‘1년에 몇 번 정도’는 31.6%였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가요가 담긴 CD는 ‘씨디알’ 또는 ‘남조선 알’이란 은어로 통한다. 젊은이들에겐 최신 한국 영상물을 많이 구해 본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친구들끼리는 “아랫동네 것 같이 보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단다.
북한에 한류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막대형 메모리 카드’로 불리는 USB다. 감추기가 좋아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단순 반입을 넘어 한국 영상물을 대량 복제해 파는 제조책과 중간상인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통계청의 ‘2010년 북한 주요통계 지표’에 따르면 영화 2~3편이 담긴 메모리칩 가격은 원본 1개당 북한돈 1만원(한화 3200원), 복사본은 5000원, 대여비는 2000원 안팎이다. 북한에서 쌀 1㎏ 가격이 지역에 따라 2000~4000원으로 웬만한 근로자 한 달치 봉급에 해당된다니 한류도 상류층만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을 인정하려는 것일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1일 공개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어깨와 다리가 훤히 드러난 원피스를 입은 가수,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바이올리니스트, 온몸으로 리듬을 타는 드러머 등이 나왔다. 공연 중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미국 영화 ‘록키’ 영상과 함께 주제곡도 흘렀다.
겉모습은 우리 걸그룹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섹시미’를 보여주려는 과장된 동작 속에선 어색함도 느껴졌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가 독특하게 창조한 주체음악’ ‘최후의 승리를 위해 앞으로 내달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전투적 기상과 불굴의 정신력’ 운운하는 방송멘트도 쉴 새 없이 나왔다. 일부 기대처럼 개방의 전조라면 좋겠지만 북한의 태도가 확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움켜쥐고 있는 핵을 포기할리도 없다. 그렇다면 북한 걸그룹은 그저 한때의 ‘구경거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한류, 통일의 바람’이란 책을 얼마 전 펴낸 부부 북한학자 강동완·박정란 박사가 탈북자 10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19%가 한국 영상물을 ‘매일 접한다’고 답했다. ‘1주일에 한 번’도 22.8%나 됐고 ‘한 달에 한두 번’이 26.6%, ‘1년에 몇 번 정도’는 31.6%였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가요가 담긴 CD는 ‘씨디알’ 또는 ‘남조선 알’이란 은어로 통한다. 젊은이들에겐 최신 한국 영상물을 많이 구해 본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친구들끼리는 “아랫동네 것 같이 보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단다.
북한에 한류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막대형 메모리 카드’로 불리는 USB다. 감추기가 좋아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단순 반입을 넘어 한국 영상물을 대량 복제해 파는 제조책과 중간상인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통계청의 ‘2010년 북한 주요통계 지표’에 따르면 영화 2~3편이 담긴 메모리칩 가격은 원본 1개당 북한돈 1만원(한화 3200원), 복사본은 5000원, 대여비는 2000원 안팎이다. 북한에서 쌀 1㎏ 가격이 지역에 따라 2000~4000원으로 웬만한 근로자 한 달치 봉급에 해당된다니 한류도 상류층만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을 인정하려는 것일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1일 공개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어깨와 다리가 훤히 드러난 원피스를 입은 가수,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바이올리니스트, 온몸으로 리듬을 타는 드러머 등이 나왔다. 공연 중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미국 영화 ‘록키’ 영상과 함께 주제곡도 흘렀다.
겉모습은 우리 걸그룹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섹시미’를 보여주려는 과장된 동작 속에선 어색함도 느껴졌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가 독특하게 창조한 주체음악’ ‘최후의 승리를 위해 앞으로 내달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전투적 기상과 불굴의 정신력’ 운운하는 방송멘트도 쉴 새 없이 나왔다. 일부 기대처럼 개방의 전조라면 좋겠지만 북한의 태도가 확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움켜쥐고 있는 핵을 포기할리도 없다. 그렇다면 북한 걸그룹은 그저 한때의 ‘구경거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