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자. 성적표를 받았다.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일까. 국어 수학 과학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흐뭇한 마음도 잠시. 반 평균에도 못 미치는 영어 점수를 보는 순간 기분이 팍 상하고 만다.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영어가 안 된다고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단어장을 새로 만든다든지, 부족한 문법을 정리한다든지, 뭔가 새로운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학원에 등록하거나 과외 선생님을 알아볼 수도 있겠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라면 미흡한 과목을 보완하려는 이런 노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기업 경영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안전한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쌓아온 볼보가 자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조사했다고 해보자.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운전자들은 자신들이 만족스러워 하고 있는 안전함에 대해서는 별 말을 안 하겠지만, 디자인이 조금 더 날렵했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아우디 운전자들은 디자인에는 별 불만이 없지만,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겠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고객들의 요구에 성적표를 받아 든 고등학생처럼 반응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마도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반면 뛰어난 항목에 더욱 집중 투자, 평균 점수와의 격차를 더 벌리려는 회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즉 볼보는 아우디를 향해 달려가고, 아우디는 볼보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칭찬받을 행동이 기업에도 꼭 칭찬받을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차별화 측면에서는 그렇다.

진정한 차별화, 즉 지속적으로 유지가능한 차별화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식의 평준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차별화란 비대칭적인 상황을 더욱 비대칭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이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1986년 일본에서 문을 연 도요코인호텔에는 발레파킹 담당자가 없다. 호텔 문을 열며 반겨주기는커녕 체크인 뒤 무거운 짐에 끙끙거려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빠듯한 객실 사이즈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뭐라도 하나 사용하려면 추가 비용이 안 붙는 것이 없다. 룸서비스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밥은 레스토랑까지 가서 먹어야 한다.

고객이 왕인 세상에 고객 만족과는 담을 쌓고 있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실시한 고객만족도 설문에서 무려 95%의 고객이 도요코인의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어지간한 비즈니스호텔들을 가볍게 따돌린 것은 물론이요, 일본 최고 수준의 호텔들과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루 평균 몇 퍼센트의 객실이 판매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지표인 객실점유율도 80%가 넘는다. 이 정도면 업계 최고 수준이다.

왜 고객들은 도요코인을 찾고, 또 만족하는 걸까. 도요코인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고객들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실제 도요코인의 모든 객실에서는 무료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로비에는 공용 노트북이 설치돼 있고, 업무 미팅을 할 수 있는 회의실도 구비돼 있다. 넓지 않은 객실 공간이지만 침대를 활용, 대형 캐리어를 수납할 수도 있다. 2인용 객실에는 업무와 수면 공간을 분리해주는 칸막이가 있다. 와이셔츠를 다릴 수 있게 다림질 판까지 마련돼 있다. 일반 여행객의 입맛을 맞춰주는 데는 별 관심이 없지만, 출장 온 직장인들의 필요는 기가 막히게 맞춰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포기’를 통해서 차별화를 이룬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커브스는 남성 고객 위주로 운영되는 헬스클럽에서 여성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여성 전용 헬스클럽을 시작했다. 운동 강도가 높지 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 기구만을 배치하고, 30분 만에 가볍게 운동을 끝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2010년 기준으로 3조원 이상의 매출에 세계 84개국에 1만개가 넘는 프랜차이즈 지점을 갖게 됐다. 커브스 역시 남들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를 이뤄낸 것이다.

차별화는 곧 포기를 의미한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화된 사회에서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자신의 특징을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지게 전달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경쟁자들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하고, 고집스럽게 나아갈 때 차별화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