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억만장자
21세 '전자결제서비스' 페이팔 입사
재닛 잭슨 가슴 노출사건 계기…이슈영상 공유사이트 창업
콘텐츠 유통 무제한 허용 '승승장구'…이용자 늘자 구글에 16억弗 매각
다음 사업은 온라인 잡지
"하는 일 없이 고액연봉 받을 수 없다"…2009년 구글 나와 아보스 창업
SNS의 저널리즘화 구상
페이팔에 지원했다. 면접관은 “인력난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실리콘밸리로 갈 기회였다. 학업을 포기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페이팔 면접관에게 “다음주에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답했다. 유튜브(Youtube) 창업자 스티브 첸은 이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페이팔에서 백만장자가 되다
1999년 페이팔에 입사했을 때 첸은 스물한 살이었다. 페이팔은 당시 수요가 급증한 인터넷 쇼핑·경매 사이트에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했다. 페이팔 초창기 엔지니어들은 훗날 링크트인 등 실리콘밸리의 유망 기업을 많이 키워내 ‘페이팔 마피아’라고 불렸다. 유튜브를 공동 창업한 채드 헐리, 자웨드 카림도 페이팔 초기 멤버다. 페이팔이 성장한 것은 우수한 엔지니어들 덕분이었다.
페이팔은 2002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시가총액이 7020만달러에 달했다. 핵심 엔지니어였던 첸은 상장으로 200만달러 이상 돈을 벌었다. 그해 페이팔은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로 넘어갔다. 첸도 이베이의 매니저가 됐다.
그러나 첸의 불만은 늘어갔다. 이베이의 경영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이팔과 달리 이베이에서는 엔지니어의 발언권이 약했다. 과거처럼 엔지니어들이 상의해가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는 이베이를 벗어나 새로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던 중 유명 팝가수인 재닛 잭슨의 노출 사건이 터졌다. 미국 슈퍼볼 공연 도중 실수로 가슴을 노출한 것. 첸은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슈가 되는 영상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영상을 돌려보고 싶어했다. 첸은 ‘동영상을 쉽게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마침 파티 등의 캠코더로 촬영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사업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써도 좋다”
첸은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2005년 2월 페이팔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2명과 함께 유튜브를 창업했다. ‘유(you)’는 모든 사람을, ‘튜브(tube)’는 텔레비전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시청자이자 제작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그의 희망을 회사명으로 삼은 것이다. 2005년 4월 공동설립자인 자웨드 카림이 19초짜리 영상인 ‘동물원에서’를 사이트에 올렸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첫 번째 영상이었다.
첸은 유튜브가 단순히 동영상을 보는 것을 넘어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능을 갖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동영상을 올리면 사용자들로부터 점수를 받고, 동영상 게시자와 친구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가볍게 소통하기를 원하는 SNS 이용자들에게 동영상을 올리고, 점수 받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첸은 곧 친구 사귀기 같은 기능은 유튜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튜브를 철저히 콘텐츠(동영상)에 집중하는 사이트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SNS 기능은 다른 소셜네트워크 업체를 활용하기로 했다. 2005년 6월 첸은 “유튜브 사용자들이 다른 사이트에 우리 콘텐츠를 얼마든지 퍼 나르게 하겠다”고 결정했다. 유튜브에 로그인하지 않고도 링크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결정으로 유튜브는 급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사용자들은 마이스페이스 등 다른 SNS를 통해 유튜브의 동영상을 퍼뜨렸다. 첸은 이를 통해 광고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동영상 유통을 무제한 허용했기 때문에 별도의 마케팅도 필요없게 됐다. 사용자들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알아서 홍보해줬다. 마케팅 부담이 줄었다.
여유자금은 사이트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투자했다. 2005년 11월에는 유명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350만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이 돈은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쓰였다. 2006년부터 회원수가 급증했다. 매일 수만명이 신규 회원으로 가입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튜브가 동영상 업계의 월마트가 됐다”고 평가했다. 유튜브가 모든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서 찾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구글에 유튜브 매각…억만장자가 되다
2006년 유튜브 이용자가 급증하자 첸은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컴퓨터 서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무선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아시아·유럽 등 해외 진출에도 돈이 필요했다.
야후와 구글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첸은 회사 매각을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매각작업을 시작한 지 닷새 만에 유튜브를 구글에 팔기로 결심했다. 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은 엔지니어를 대하는 문화였다. 유튜브 직원의 80%가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구글은 엔지니어들에게 업무시간의 20%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배려해줬다.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반면 야후는 경영진 대부분이 비즈니스 전문가였다. 당시 그들의 주력한 것은 마케팅이었다. 양사의 문화차이는 첸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줬다.
유튜브는 결국 16억5000만달러에 구글에 인수됐다. 구글은 유튜브의 글로벌 전략을 적극 지원했다. 유튜브는 2007년 영국, 브라질, 포르투갈 등 15개국에 진출했다. 현재 전세계 22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유튜브의 하루 동영상 검색 횟수는 20억회를 넘어섰다. 첸은 회사 매각으로 억만장자가 됐다. 타임지는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뽑으며 “유튜브가 위키피디아, 마이스페이스 등과 함께 사회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말 구글에서 나왔다. ‘하는 일 없이 구글에서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의 샌마테오에서 같이 퇴사한 채드 헐리와 함께 ‘아보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아보스를 통해 그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이 함께 만드는 온라인 잡지를 구상하고 있다. 인터넷에 정보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쓸모있는 정보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개인들이 자신만의 잡지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좋은 잡지를 구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매거진 공유’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SNS를 저널리즘의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게 그의 목표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