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 중에는 아직까지 디자인경영의 개념을 현장에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듯하다. 디자인경영의 유용성을 일찍이 실감한 기업일지라도 고객과의 소통, 기업 이미지 제고 등 주로 대외적인 측면에만 국한해서 활용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혁신 기업들은 경영 현장에서 직면한 대외적인 문제 못지않게 대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독일 브레멘국제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옌스 포이르서터는 창의력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포이르서터는 실험 참여자들을 두 그룹으로 구분, 한쪽 그룹은 자유와 일탈을 떠올릴 수 있는 펑크족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다른 그룹에는 논리적이며 보수적인 공학자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이후 두 그룹을 대상으로 창의력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펑크족 이미지를 떠올렸던 사람들이 반대쪽 그룹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창의력을 보였다. 실험 결과는 사무실이나 회사 공용 공간을 인테리어할 때 직원들의 창의력을 독려하고자 한다면, 해당 공간을 어떤 형태로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무실 환경만 바꿔도 창의력 ‘쑥쑥’

로버트 울리치 텍사스A&M대 교수는 꽃이나 식물이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창의력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 결과 남성 직원의 경우 꽃이나 식물이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아이디어 제안 건수가 15% 증가했고, 여성 직원은 꽃이나 식물이 곁에 있는 환경에서 근무할 때 보다 유연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물이 아니라 초록색을 통해서도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로체스터대의 엔드루 엘리엇 연구팀은 초록색을 많이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초록색의 긍정적이며, 편안한 느낌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일련의 연구 결과들은 사무실의 색감이나 사무실 벽에 걸어둔 이미지, 그림조차 직원들의 사고력과 업무 역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디자인은 이처럼 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 상호 간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다 준다. 요즘 들어 많은 기업들이 사무실 공간 디자인 특성을 변화시켜 부서 간, 동료 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거나 조직 문화를 개선한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사람은 공간에 큰 영향받아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어진 공간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으며, 공간은 사람들이 특정 행위를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공간을 통해 유도되는 행동은 간헐적이고 일회성 있는 행동(action)이나 활동(activity)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띠고 지속적인 양상을 갖고 있는 행태(behavior)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크다. 이런 점에 주목한 많은 기업들은 조직의 창의력을 높이거나,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또는 조직 문화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사무실 공간을 이에 부합하는 형태로 바꾸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 회사의 공용 공간이다. 회사 공용 공간은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회의나 업무뿐만 아니라 휴식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변화시킬 경우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어느 분야보다도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 광고회사에서도 회사 공용 공간을 변화시켜 창의력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광고회사 HHCL은 직원들이 빈번이 부딪히면서 커뮤니케이션할 때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사실을 활용하기 위해, 서서 회의를 하거나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일하도록 사무실을 설계했다.

#구글 공용공간, 즐거운 곳으로

구글 역시 사내 공용공간을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창의적인 담론 문화와 원활한 직원 간의 교류를 확장하기 위해 공용공간을 즐거운 곳으로 만들었다. 구글은 공용공간을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자 동료 직원들과 함께 즐겁게 대화하고, 무료로 음료수도 마시고, 쉴 수 있는 기능이 모두 충족되는 편안한 장소로 구성했다. 이런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업무 관련 회의나 동료들 간의 비공식적인 대화, 외부 관계자와의 접견 등은 일반적인 사무실 속에서 진행되는 엄숙하고 부담스런 담론이기보다는 자유롭고 창발적인 내용이 다분히 포함된 담론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창조적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 대화들이 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3M 역시 창업한 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최근 4년간 개발한 신제품에서 회사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해야 한다는 경영목표를 갖고 혁신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직원들 간의 소통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테크니컬포럼’이다. 3M에서 실시하는 테크니컬포럼은 직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포럼은 35개국에 흩어져 있는 3M 연구소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해 온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3M은 이와 함께 범기능 부서가 한 곳에 모여 BDU(business development unit) 단위의 토론을 전개하는 토론 문화가 활성화돼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M은 기술직 사원들이 자신의 노동시간 중 15%를 자신의 일과 무관한,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이나 꿈을 키워가는 데 사용해도 좋다는 불문율이 있다. 때문에 3M에 재직하는 여러 기술자들은 이런 규칙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들이 흥미를 갖는 연구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

테크니컬포럼과 BDU 단위의 토론 등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고, 직원 개개인의 관심사와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3M의 공용공간과 사무실이 어떤 구조와 분위기를 추구하며 조성돼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휴식, 여유로운 시간, 활발한 토론 문화를 이끌어내는 업무 공간이 있었기에 3M은 지금까지 6만여종의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LG디스플레이, 크리에이티브 타임제

LG디스플레이도 구글, 3M 등 글로벌 혁신 기업들에 대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임직원들의 업무 집중력 향상과 창의력 향상을 위해 근무시간 중 휴식시간을 갖는 일명 ‘크리에이티브 타임(creative time)제’ 시행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사내 건물 1층 카페테리아에 직원들 간에 보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뒀으며, 로비에는 다양한 문화공간을 조성해 사진과 그림 전시회 등을 개최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사내에서 구축한 높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외부 협력업체나 고객과의 관계로도 확장될 수 있다. 애플의 대표 상품인 아이팟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제품이 나올 때까지 채 10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멋진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애플 내부 직원들의 높은 소통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애플은 자체 생산 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전 세계 어느 조직과도 협력할 수 있고, 어느 전문가와도 협업할 수 있는 애플 직원들의 능력, 소통 능력이 없었다면 10개월 만에 전 세계를 휩쓴 아이팟을 출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부즈앤드컴퍼니에서 전 세계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어느 회사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앞에서 언급한 애플, 구글, 3M이 1, 2, 3위를 차지했다. 부즈앤드컴퍼니 파트너인 배리 재루제이스키에 따르면 애플, 구글, 3M의 뒤를 이어 GE,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P&G, IBM, 삼성, 인텔 등이 10대 혁신기업으로 꼽혔지만 애플과 구글, 3M을 꼽은 경우가 나머지 7개 기업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꼽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플, 구글, 3M 같은 기업들의 영광은 직원들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게끔 업무 공간과 환경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