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의 눈동자에서 하늘의 구름과 피사체를 촬영한 카메라맨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표범의 털은 바람에 날려 바짝 살아있었고 색감은 깊고 진했다. 마치 초원 어딘가에서 직접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애플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열린 2012 세계 개발자회의(WWDC)에서 최신 맥북 프로 제품을 공개했다. 애플이 '가장 아름다운 컴퓨터'라고 표현한 이 신제품은 아이폰과 뉴아이패드에 적용했던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처음으로 노트북에 탑재돼 주목을 받았다.
맥북 프로 레티나 15.4인치 제품을 직접 체험해 본 소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휴대성과 기능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종합 선물세트' 정도가 될 것이다. 선명한 화질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와 초경량, 심플한 디자인 등 사진이나 영상 편집이 잦은 전문가에게 적합한 제품이었다.
◆ "동물 깃털, 파도 물결까지 또렷하게"…해상도 기존보다 4배 향상
제품을 한번 들어봤다. 맥북 에어만큼은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두께 1.8cm, 무게 2.02kg로 맥북 프로 일반형 제품보다 0.6mm 얇고 540g이나 더 가벼웠다. 덮개를 열어보니 배경화면의 아이콘들이 보다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배치돼 있었다. 일반형 제품의 화면이 다소 뿌옇게 느껴질 정도였다.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진가는 사진편집 프로그램인 애퍼처(Aperture) 3.3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썸네일 사진이 풀HD 화질로 제공돼 열어보지 않고도 미세한 글씨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원본 사진도 전체 이미지가 압축없이 그대로 다 표현돼 마우스를 이리저리 자주 옮겨다니지 않고 빠르게 사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동물의 깃털이나 파도 물결 움직임까지 있는 그대로 화면에 보여지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이 밖에 아이포토(iPhoto)와 연동이 가능해졌고, 화이트 밸런스 기능과 하이라이트 및 그림자 기능, 자동 고화질 기능이 업그레이드 됐다.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최적화된 애퍼처 새로운 버전의 가격은 79.99 달러다.
510만 픽셀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기존보다 4배 향상된 2880x1800의 해상도를 지원한다. 맥 제품군 중 해상도가 가장 뛰어난 27인치형 아이맥(iMac)의 해상도(2560x1440)보다 훨씬 더 높다. HD TV보다도 300만 개나 더 많은 화소(Pixel) 수를 제공한다.
◆ "풀HD 영상 최대 9개까지"…768GB 플래시 메모리 탑재
화질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속도였다. 맥북 프로 레티나는 현재 시판되는 중앙처리장치(CPU) 중 가장 빠른 3세대 인텔 코어 i7 프로세서와 올 플래시(All flash) 스토리지를 탑재했다. 최대 768GB까지 메모리가 제공된다. 기존 하드 드라이브보다 최대 4배의 성능으로 부하가 많이 걸리는 작업도 내부 스토리지에서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를 실행해봤다.
뷰어와 편집 공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해놨다. 풀HD 영상을 최대 9개까지 끊김없이 재생하며 동시에 편집할 수 있다.
초당 데이터 전송속도가 최대 500mb로 압축하지 않은 영상의 경우엔 4개까지 편집이 가능하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클릭만하면 쉽게 연결할 수 있다.
이 제품이 전문가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었다. 무겁고 비싼 장비가 아니어도 맥북 프로 레티나가 있으면 현장에서 촬영 후 바로 간편하게 편집 작업을 할 수 있다.
실제 파이널 컷 프로는 헐리우드 영화 편집자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독립 영화제작사들 사이에 널리 쓰이고 있다. 앱스토어에서 299.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애퍼처 사진편집기에서도 플래시 메모리의 이점을 살려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로 촬영한 고용량 파일 100장을 일반형 제품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불러올 수 있었다.
◆ 배터리 최대 7시간, 대기모드 30일 유지…"외형보다 내실"
맥북 프로 레티나는 외관보다 내부에 정성을 많이 쏟은 느낌이었다. '인간 지향적' 디자인으로서 사용자에게 최선의 편의를 주려는 흔적이 엿보였다. 비대칭 날 방식으로 팬의 소음을 최대한 줄였고, 테두리 부분의 베젤과 모니터 패널 사이의 1mm 간격을 없앴다. 사용자와 콘텐츠 사이의 방해요소를 걷어내 컴퓨터 이용환경을 배려하려 했다는 것이 애플 측의 설명이다.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중앙의 기본배터리 2개외에 크기별로 세분화한 배터리 4개를 좌우 양측에 집어 넣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배터리 최대 사용시간은 7시간이며 대기모드로 전환 시 30일까지 수명이 유지된다.
이 밖에 키보드 왼편에 내장된 마이크 2개(지향성 듀얼 마이크)는 주변 잡음을 섞이지 않게끔 해 사용자의 목소리만을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또 불편하다고 여겨졌던 모니터 반사율을 75%로 낮춰 화면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GT650M 그래픽 카드가 탑재됐다. USB 3.0 2개와 썬더볼트 2개, HDMI, SD카드 슬롯이 지원된다. 가격은 289만원부터다.
한경닷컴 김소정 기자 sojung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