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KAIST 총장(사진)이 이사회의 계약 해지 압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서 총장 거취 문제는 오는 20일 열리는 KAIST 이사회에서 표결처리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서 총장은 지난 14일 저녁 각 언론사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KAIST 총장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소신 있는 학교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이사회는 정당한 사실 관계에 따른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KAIST 이사회가 서 총장에 대한 계약해지건을 20일 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결정한 후 서 총장이 본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처음 밝힌 것이다.

서 총장은 서신에서 “제 나이가 이제 77살인데 무슨 영광을 보려고 자리에 연연하겠으며 무엇을 위해 욕을 먹으면서까지 버티려고 했겠느냐”면서 “지난 1년간 수십차례 근거 없는 음해와 비난을 당하면서 이 자리를 지켜 온 이유는 바로 대학개혁이라는 시대가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 누구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대학개혁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저지하려 한다면 KAIST와 한국 교육역사에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20일 해임(계약해지)당하더라도 한국에 남아있는 마지막 날까지 저의 길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사회는 소문이나 감정, 짐작에 치우친 주장에 정치적으로 편승해서는 안되는 곳”이라며 “일부 기득권 교수집단의 탄핵 요구에 사실확인 없이 면죄부를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 총장은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입장을 다시 강조할 예정이다. 그의 지지자 일부는 교육과학기술부를 방문해 계약해지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총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사회에서 계약해지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16명의 이사진 중 8명이 찬성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오명 이사장을 비롯해 서 총장에게 비우호적 인사가 12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이 가결되면 서 총장은 90일 이후 물러나야 한다. 2010년 양측이 맺은 계약에서 어느 일방이 90일 전에 통보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규정을 뒀기 때문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해임 처리가 아니라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이어서 서 총장이 버티기 어려운 셈이다. 하지만 학교 측도 그에게 남은 임기 2년치 연봉 72만달러(8억2000만원)를 배상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이사회는 서 총장의 학내 소통부족, 학교 안정화 훼손, 리더십 부재 등을 이유로 계약해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간 서 총장의 자진 사퇴를 종용하다 손해배상까지 감수하며 계약해지에 나선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오 이사장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과학계와 교수사회에서 서 총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며 “이제는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KAIST 학부 총학생회는 이날 이사회에 총장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공식 보도자료를 냈다. 학생회는 지난 5월 응답자 75%가 총장 퇴진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