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카드 가맹점들이 대형 카드회사를 상대로 7년여에 걸쳐 소송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뒀다. 가맹점이 현금 결제고객보다 카드사용 고객에게는 같은 물건이라도 더 비싼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비자 마스터 등 신용카드사와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대형 은행들은 2005년부터 진행해온 소송을 끝내는 대가로 소매업체에 60억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카드사들은 별도로 향후 8개월 동안 가맹점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약속했다. 면제 금액은 12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합의금보다 더 큰 수확은 가격 결정권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카드사들은 가맹점이 신용카드 사용 고객에게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것을 금지해왔다. 신용카드 사용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다. 약국 체인 월그린, 슈퍼마켓 체인 퍼블릭스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2005년 이 같은 관행이 불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병원 제과점 등도 가세해 집단소송으로 확대됐다.

이번 합의에서 카드사들은 더 이상 가맹점 가격을 통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신용카드 고객에게 돈을 더 받으려면 점원이 이 사실을 미리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가맹점이 가격 결정에 대한 재량을 갖게 되면서 일부 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소매업체들이 실제로 신용카드 사용자에게만 비싸게 물건을 팔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네아폴리스의 한 가구업체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나 경쟁사가 먼저 가격을 올릴 경우에 한해서만 2.5% 정도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이번 합의로 가격통제 논란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노아 핸프트 마스터카드 변호사는 “소매업체들의 주장에 대해 방어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루한 소송전을 끝내고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