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법원 판사된 파독광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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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 1.5세 존 리씨 취임
미주 한인 역사상 3번째 종신판사
"이민자는 더 노력해야" 어머니 교육
하버드 로스쿨 오바마와 동문수학
미주 한인 역사상 3번째 종신판사
"이민자는 더 노력해야" 어머니 교육
하버드 로스쿨 오바마와 동문수학
그는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 손에 이끌려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기회의 땅’이었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허름한 단칸방 임대아파트가 전부였다. 소수민족 이민자로서의 서글픈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 뒤 40년 가까이 흘러 그는 미국 법조인들이 최고 영예로 여기는 종신 연방법원 판사가 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시카고의 일리노이주 북부지방법원에서 취임식을 가진 존 리 씨(이지훈·44) 이야기다. 이날 취임식에는 리 판사를 백악관에 추천한 딕 더빈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을 비롯해 리 판사의 가족, 친구, 동료 법조인 등 약 250명이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독 축사를 통해 리 판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하며 “리 판사는 맡겨진 임무를 잘 감당하면서 연방 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 판사는 부인과 두 자녀(딸 14세, 아들 10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문을 낭독했다. 더빈 상원의원은 “리 판사는 연방판사로서의 성품과 역량을 갖췄으며 지역사회 봉사에도 열정을 쏟아왔다”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이어 “단칸방 임대 아파트에서 낯선 언어로 새 삶을 시작했던 리 판사의 개인사는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라며 “이는 리 판사 개인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미국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리 판사는 이 자리에서 이민 가정의 자녀로 겪었던 애환을 털어놓은 뒤 “부모님은 내게 두 가지를 늘 강조하셨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 하지만 이민자로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리 판사는 1968년 박정희 정권 시절 파독 광부인 아버지 이선구 씨(73)와 파독 간호사인 이화자 씨(69)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생후 3개월부터 한국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다섯 살 때인 1972년 부모의 손을 잡고 시카고로 떠났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어머니 이씨는 “아프다고 하면 타이레놀을 주머니에 몰래 넣어서라도 학교에 보낼 정도로 강하게 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하버드대(1989년 졸업)와 하버드대 로스쿨(1992년 졸업)을 각각 우등으로 졸업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한발 다가섰다. 하버드 로스쿨을 1991년 졸업한 오바마 대통령과 2년간 학교를 같이 다닌 인연도 갖고 있다.
로스쿨 졸업 후 리 판사는 미 법무부 소속 변호사, 법무장관 특별 보좌관을 거쳐 1994년부터 시카고 대형로펌인 메이어 라운, 프리본 앤드 피터스 등에서 반독점 통상 관련 소송 변호사로 활동했다.
리 판사는 취임식에서 “새로운 기회는 자신이 얻은 기회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 창조된다”며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미 법조 최고 영예인 종신 연방법원 판사에 오른 한인은 리 판사를 포함해 모두 세 명이다.
최초의 한인 종신 판사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판사에 오른 허버트 최 씨(최영조·2004년 작고)였다. 두 번째는 지난해 1월 한인 여성 최초로 연방법원 판사에 임명된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법 루시 고 판사(고혜란·42)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