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로 꼽히던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다고 한다. 통상 죽을 때까지 보직을 유지토록 하는 북한 관행으로 보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지난 5월까지 해외출장을 다닌 것을 보면 건강에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권력투쟁 결과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권부 내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군의 최고 실세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쫓겨나고, 그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일 집권 기간에도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졌던 게 북한의 실상이다. 금강산 관광객 사살 등 잇단 만행도 강·온건파 간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정은 체제 이후에도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다. 지난 13일 캄보디아 지역안보 포럼에서는 핵에너지 개발과 이를 위한 경수로 건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등 도발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들이 굶주리는 와중에도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을 아직은 점치기 어렵다. 이영호의 해임이 권력층 내부의 찻잔 속 작은 파동이라고 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김정은의 파격적인 선전술만이 외부의 주목을 끌고 있다. 모란봉 악단은 최근 걸그룹을 방불케 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색정적인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와 미국 상업영화인 록키의 하이라이트 영상도 무대 배경에 올렸다. 퇴폐적이라고 비난하던 자본주의 상징물까지 동원한 것을 개방의 상징이라고 해석하기에는 그러나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우리로서는 좀더 무게감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북한은 반개혁·반개방적인 헌법을 수정하고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는 보다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핵 포기를 선언하는 것은 당연한 사전 조치다.

수많은 탈북자들은 북한이 더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개인의 주관적 경험도 누적되면 객관성을 갖게 된다. 짧은 치마의 모란봉이 개방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이영호 축출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도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