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닛산그룹이 일본 닛산자동차의 일부 차종을 르노삼성자동차의 부산 공장에서 생산한다. ‘팔 만한 차’가 없어 판매 부진에 빠진 르노삼성에 ‘긴급 수혈’을 하고 생산능력 부족과 엔고(高)에 시달리는 닛산에 도움을 주기 위한 포석이다.

1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르노닛산그룹은 판매량 급감으로 경영난에 빠진 르노삼성에 닛산 자동차의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닛산은 르노삼성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비롯한 중·대형차 생산을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위탁 생산 규모는 연간 수만대 수준일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20일 방한, 르노삼성 부산공장 등을 둘러본 뒤 이런 방안을 포함한 지원 계획과 르노 및 닛산의 글로벌 경영 전략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구체적인 생산 차종과 규모 등은 곤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 들여와 수입차로 판매 중인 차종은 생산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말에는 르노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 부회장이 한국을 찾아 소형 SUV 출시 계획을 내놓고 르노삼성을 아시아 지역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닛산은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스페인 등 전 세계 18개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467만대를 판매했다.

닛산이 한국에 자동차 생산을 위탁하려는 것은 엔고 및 한국이 유럽연합(EU) 등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이 맺은 FTA와 원화 약세를 활용, 르노삼성을 수출전진기지로 삼아 수출을 늘리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만 FTA 효과를 누리려면 원산지 규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을 한국에서 생산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닛산은 생산 능력 부족과 엔고 대응이 최대 과제이고 르노삼성은 신차를 내놓아 판매량을 늘리는 게 숙제”라며 “닛산과 르노삼성이 손잡으면 두 회사에 윈·윈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닛산은 르노삼성에서 공급받은 세단을 닛산 브랜드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판매한 적이 있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 주력산업 팀장은 “르노삼성과 닛산의 연합 전략은 설비유지와 고용창출 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위탁생산이 늘어나면 르노삼성이 독자성을 상실하고 닛산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닛산 SUV들이 수입차로 대거 국내시장에 들어와 있지만 판매가 미미한 수준”이라며 “국내에서 생산하면 가격 메리트가 생기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대지진 여파에 따른 생산기지 분산 차원이며 일시적으로 르노삼성에 닛산 차량을 위탁생산하게 한 뒤 매각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