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강이 도심을 적시는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시내에는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과 바그너가 탄호이저를 초연했던 오페라극장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2007년 여름 신승영 에이텍 사장(당시 52세)은 드레스덴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 이곳에 에이텍 공장이 있었다. 하지만 언덕의 고성 등 아름다운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LCD(액정표시장치) TV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와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이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LCD TV는 당시로서는 효자 품목이었다. 연간 400억원어치를 팔던 제품이다. 한국에서 반제품을 드레스덴에 내보낸 뒤 이곳에서 조립해 독일과 유럽지역에서 판매했다. 글로벌 전자업체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는 한참 떨어졌지만 대당 가격이 20%가량 낮은 덕분에 꾸준히 팔려나갔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들이 가격경쟁에 뛰어들면서 판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재고 부담이 늘었다. 자금압박도 받았다. 몇 달간 고민하다 결국 손을 뗐다.

이 결정은 에이텍에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줬다. 신 사장은 “다시는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는 최종 소비재에는 손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비재는 결국 대기업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중견·중소기업으로선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기업에 납품(B2B)하거나 정부에 공급(B2G)하는 제품만 생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진출한 분야가 교통카드시스템이다. 서울의 교통카드시스템이 바로 이 회사가 개발한 것이다. 이는 버스와 택시요금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교통카드단말기와 지하철 요금을 처리하는 발매기, 정산기, 충전기, 자동판매기 등을 포괄하는 제품을 이른다. LCD TV 사업에서의 실패에 절망하지 않고 ‘위기에는 반드시 기회가 숨어 있다’는 ‘역발상 경영’으로 교통카드시스템 사업에 진출한 것이 회사 성장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에이텍의 작년 매출은 1111억원에 달해 2010년에 비해 18% 늘었다. 이 회사의 제품군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통카드시스템이다. 둘째는 디스플레이 응용제품이다. 회사 내부망과 외부망을 자유자재로 바꿔 연결할 수 있는 ‘망전환 일체형PC’와 디지털홍보게시판, 지능형 창구안내시스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셋째, 시스템통합(SI)이다. 고객정보시스템 업무 전반에 걸친 기획에서 설계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과 유지·보수를 총괄하는 서비스다. 이들 사업군에서 골고루 매출을 올린다. 로컬 수출을 포함, 연간 수출액은 약 1000만달러에 달한다. 수출 주력제품은 교통카드시스템이다. 대상 지역은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등이다.

신 사장은 용산전자상가에서 두 명의 직원을 데리고 창업했다. 이때가 1989년. 그의 나이 34세였다.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컴퓨터사업부에서

근무한 그는 자기 사업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 창업했다. 이 회사가 에이텍시스템(에이텍의 전신)이다. 친구가 23㎡(7평) 남짓한 사무실 한쪽을 빌려줘 이곳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컴퓨터부품을 수리했다. 점차 사업이 확장되자 1993년 (주)에이텍을 세웠다. 성실한 수리를 통해 고객의 신뢰를 얻자 수리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장비를 납품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은 데 따른 것이다.

본격적인 제조는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인 1998년에 시작했다. 신 사장은 “문을 닫는 대기업이 줄을 이으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며 “이들을 채용해 연구소를 꾸미고 제품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역시 역발상 경영이다. 남들이 움츠릴 때 적극적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한 것이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히트상품은 있게 마련”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들 인력을 통해 본체와 모니터가 붙은 ‘LCD 일체형 PC’를 개발, 히트를 쳤다.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된 일반 제품에 비해 공간을 적게 차지하자 인기를 끈 것이다. 2001년 코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여유가 생기자 제품개발에 더욱 매진했다. 관공서 및 금융권에 공급하는 LCD 모니터에 이어 LCD TV 사업에 진출했고 2008년부터 교통카드시스템 및 시스템통합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창적인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대기업에 납품하건 정부에 공급하건 독자기술이 없으면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인력을 꾸준히 보충, 현재는 전체 직원 268명의 37%에 이르는 99명을 연구인력으로 두고 있다. 이들을 통해 3건의 신기술(NeT)을 개발한 것을 비롯해 14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10건의 특허를 출원해놓고 있다. 신 사장은 “작년엔 전체 매출의 3.6%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했고 올해는 이 비율이 5.0%로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사는 불황에도 채용을 지속적으로 늘려 최근 ‘서울시 일자리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인적자원 우수기업(Best HRD)’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도 뽑혔다.

이 회사는 오는 8월 본사를 판교로 이전한다. 이를 계기로 ‘제2의 도약’에 나설 계획이다. 신 사장의 꿈은 두 가지다. 우선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정보기술(IT)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첨단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된 서울의 통합 교통카드시스템을 수출하는 것이다. 그는 “인구 1000만명이 이용하는 교통카드시스템은 우수성이 충분히 검증됐다”며 “이를 인구 100만명 안팎의 해외 도시에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사장은 “서울시의 ‘하이서울 글로벌스타기업’, KOTRA의 ‘월드챔프기업’으로 뽑혀 이들 기관의 수출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한국의 우수한 교통시스템을 세계에 전파해 ‘교통 한류’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작원 100여명도 참여

에이텍의 오창송 수석연구원은 입사후 숭실대 정보통신과를 졸업했다. 이상무 부장(자회사인 에이텍시스템 소속)은 동서울대 컴퓨터정보과를 마쳤다. 한성호 경영지원실 부장은 현재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이동운 차장은 서경대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들이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다닐 수 있는 것은 회사 측이 시간을 배려해줄 뿐 아니라 학비 전액을 대준 덕분이다.

신승영 에이텍 사장은 직원들에게 “실력을 키워 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대학이나 대학원에 보내주는 것이다. 그는 △학연·지연을 따지는 사람 △머리만 있고 열정이 없는 직원 △간판만 있고 실력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는 “머리나 간판보다 열정과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번 해보자’며 도전하는 직원이다.

그가 마라톤에 도전해 여러 차례 완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원들 대부분도 마라톤을 즐긴다. 주요 마라톤대회에는 전직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여명이 참가한다. 신 사장은 “마라톤을 통해 인내심을 기를 수 있을 뿐아니라 단합도 다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회 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때 절제된 생활을 하며 체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도 마찬가지”라며 “성과도 중요하지만 도전하는 자세와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