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는 지난 5월 시민들의 비만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식당에서 대용량 탄산음료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업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 내년 3월부터 뉴욕내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경기장 등에서 탄산음료나 청량음료를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먼 나라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도 비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10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율이 1998년 26.0%에서 2010년 30.8%로 늘었고, 청소년(12~18세) 비만율도 1998년 9.2%에서 2010년 12.7%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비만이 이보다 더 심각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한림대 의대 조사 결과, 국내 39세 이상 성인남녀 10명 중 4명(남성 37.2%, 여성 38.6%)이 비만이었다.

비만은 그저 뚱뚱해서 답답해보인다는 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성인병과 우울증 등 신체·정신건강 전반에 걸쳐 피해를 끼친다. 일종의 합병증 같은 것이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한 사람 100명 중 50명이 자기 체중을 10㎏ 감량하는 데 성공하지만 1년 뒤에도 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며 “유전자 변질, 장내 세균, 정신건강, 운동부족 등 비만 해소를 방해하고 심화시키는 다양한 요인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변질이 비만 촉진시켜

최근 학계에선 비만의 숨겨진 원인으로 ‘유전자 변질’에 주목하고 있다. 유전자가 변하면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고 비만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전자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면 비만을 야기하는 병증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해 인체의 세포 재생능력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중증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예컨대 비만이 있는 사람들은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증을 유발하는 수많은 종류의 유전자가 변질된다. 특히 면역체계를 유지하는 백혈구 가운데 T-임파구를 만드는 유전자의 세포 재생능력이 저하되면 암세포를 죽이는 기능이 약화돼 암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 비만으로 정상세포의 재생능력이 떨어진 데다 면역기능 저하로 암세포를 제어할 수 없으면 암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체중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게 렙틴(leptin)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만드는 렙틴이라는 생체조절물질은 지방의 연소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해 비만을 억누르고 혈당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또 아디포넥틴(adiponectin) 유전자가 생산하는 아디포넥틴은 지방세포에서 방출되는 호르몬으로 당뇨병 동맥경화증 비만 등의 예방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염증을 차단하는 성질을 지녀 혈관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고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조절한다. 아디포넥틴이 결핍되면 비만, 인슐린 저항성(인슐린이 분비되나 수용체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음), 당뇨병, 동맥경화증 등 대사증후군이 나타난다. 비만한 사람에게는 이런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최근의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렙틴 유전자 또는 렙틴수용체 유전자에 결함이 있으면 지방세포 속에 지방이 과잉 축적돼 비만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한 영양 레시피

비만을 유전자 변질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자가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 권용욱 에이지클리닉 원장은 “안토시아닌, 비타민C·E 등의 항산화제로 세포핵 내 DNA가 손상되는 것을 막으면 노화방지는 물론 비만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토시아닌 연구에 몰두해 온 폴란드 바르샤바의대의 마렉 나루세비츠 교수(심혈관내과)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갈색지방세포(지방을 태워 열로 발생시키는 세포)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비만세포의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해 비만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안토시아닌은 아로니아베리(블랙초크베리), 블루베리, 복분자 등 베리류와 가지, 적포도, 체리 등에 풍부하다.

뚱뚱한 사람이 많이 갖고 있는 악성지방세포는 독소와 스트레스에 의해서 생성된다. 악성지방세포가 가진 유전자를 ‘비만유전자’라고 하는데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 중 97%가 2~3년 후에 다시 살이 찌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장내 세균이 비만을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다.

비만을 유발하는 장내 세균의 분포를 개선하기 위해 기능성 유산균이 도움이 된다. 비만이 있는 사람은 인슐린 감수성(인슐린 수용체에서 인슐린을 받아들여 혈당을 연소시키는 것)이 떨어지므로 희소 미네랄인 크롬을 복용하는 게 추천된다. 섬유질은 지방의 체외 배출을 돕고 동맥경화를 개선하며 유산균의 좋은 먹이가 되므로 하루에 210g 정도 채소나 과일 섭취가 권장된다. 210g은 작은 접시로 6~7개 분량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장봉근 대산천연물신약개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