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펌 셰퍼드멀린의 김병수 서울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이메일로 이력서를 50통이나 받았다. 발신인이 대부분 국내에서 활동 중인 미국 변호사들이지만 로스쿨 졸업생도 있다. 국내 변호사는 5년 이후에나 외국 로펌 취업이 가능하지만 인턴으로라도 써달라는 것이다. 서울사무소가 들어설 을지로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23층에 짐을 채 풀기도 전이지만 쇄도하는 ‘러브콜’에 김 변호사는 입이 귀에 걸렸다.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법률서비스 고객인 기업들은 물론 법조계도 ‘이방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이 커질 것 기대하고 들어왔다”

22일까지 법무부에 서울사무소 개설 인가를 신청한 외국로펌은 총 17곳. 영국계가 3곳이고 나머지 14곳은 미국계다. 베이커앤드매킨지 등 추가 신청이 예상되는 곳까지 감안하면 20곳 정도가 국내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예상치 10곳보다 배나 많은 규모다.

지난 19일 한국경제신문 주관 외국로펌 간담회에 참석한 6개 외국 로펌 서울사무소 대표들은 “당장의 시장 규모가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보고 들어왔다”는 반응이었다. 롭스앤드그레이의 김용균 변호사는 “한국은행 통계를 보고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업과 정부가 외국 로펌들에 지급하는 변호사 비용이 2006년 6억9700만달러에서 2011년 11억8360만달러로 약 70% 늘었는데, 앞으로 14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 클리어리고틀립의 이용욱 변호사는 “서울이 큰 시장이 아닌데 10개가 넘는 로펌이 들어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며 “수임료가 떨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점령군인가 연합군인가

외국 로펌의 국내 입성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로펌에 자문 분야 등 영역을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외국 로펌 대표들은 손사래를 쳤다. “국내 일은 우수한 한국 로펌 변호사들과 경쟁이 안된다”며 해외 진출 기업을 돕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 맥더못윌앤드에머리의 이인영 변호사는 “고객인 기업을 위해 국내외 로펌이 상호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헤이스팅스의 김종한 변호사는 동료들로부터 “코오롱 사내변호사 같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코오롱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기 때문이다. 코오롱은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1심에서 1조여원(9억1990만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코오롱 공장을 찾아 직원들을 만나봤다는 그는 “코오롱은 오랫동안 기술력을 쌓아온 정말 좋은 회사다. 소송에서 질 이유도 없지만 져서도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과 개방방식 비슷할 것

셰퍼드멀린은 실력 있는 미국 변호사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법률시장이 100% 개방되는 5년 뒤에는 국내 변호사를 고용해 국내 송무시장에도 참여하겠다는 것.

김병수 변호사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변호사 숫자가 100~150명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로펌은 대부분 5~10명 선에서 소규모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5~10년 후 전망과 관련, 클리퍼드챈스의 김현석 변호사는 “실력있는 거대 로펌은 남고, 나머지는 분야별로 짝짓기하는 일본과 비슷한 모습을 띨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병일 /이지훈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