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어느 날, 인천에서 자동차용 플라스틱 사출부품을 생산·수출하는 중원정밀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품 수입사인 제너럴모터스(GM) 태국법인에서 납품가격을 깎겠다는 통지였다. 한국과 동남아시아연합(아세안)과의 FTA체결로 관세가 인하된 만큼 납품가격을 내리라는 얘기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FTA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를 보려면 수출 제품이 한국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 다행히 관세청의 도움을 얻어 원산지 증명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제품 가격이 낮아지자 해외에서 주문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윤관원 대표는 “지난해 FTA 지역 수출이 전체 수출의 50%를 넘었다”며 “수출 증가로 공장을 매년 확장해 직원도 계속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과 중소기업청이 공동 주관한 ‘FTA 활용 중소기업 경진대회’가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지난해 7월과 올해 3월 각각 발효된 한·유럽연합(EU) FTA와 한·미 FTA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뛰어든 10개 중소기업의 성공 사례가 공개돼 주목받았다. 중원정밀도 이런 기업 중 하나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500명이 넘는 방청객이 몰려 이들의 성공 스토리에 귀를 기울였다. 참석자들은 “FTA를 잘 활용하면 중소기업 제품도 얼마든지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FTA로 세계 3위 업체가 되다

지폐 계수기 등을 만드는 기산전자는 2010년까지만 해도 매출 2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EU FTA로 2.2%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바이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김동민 기산전자 기획팀장은 “지난해 하반기에 주문이 폭증하면서 작년 연간 매출이 600만달러로 뛰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한·미 FTA 덕분에 미국 수출 물량에 붙던 1.8%의 관세까지 사라져 가격 경쟁력이 훨씬 높아졌다. 김 팀장은 “일본 경쟁사들을 따돌리면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2010년 6위에서 올해 3위로 올라섰다”고 덧붙였다.

산업용 코팅장갑을 생산하는 천우텍스타일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지난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FTA가 발효되면서 올해 상반기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71% 늘어났다. 한·미 FTA 발효 후에는 100일 만에 수출물량이 100만달러 증가했다. FTA에 따른 관세 철폐 효과(13.2%→0%)를 톡톡히 누린 것이다.

사격용 조준경을 만드는 수옵틱스는 한·미 FTA로 관세 14.9%가 철폐되자 수주 물량이 100일 만에 4.5배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이 300만달러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470만달러를 팔았다. 김민철 수옵틱스 차장은 “FTA로 주문이 쇄도해 올해 매출은 작년의 2배가 넘는 700만달러로 예상한다”며 “직원이 70% 늘어나는 등 회사 규모가 커지고 사기도 높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이날 성공 사례를 발표한 중소기업들은 “FTA 효과를 누리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원산지 증명을 받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관세 인하 혜택을 누리려면 ‘한국산’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바이어에게 관세 철폐 효과를 알리는 사전 정지작업도 필요했다.

천우텍스타일은 한·미 FTA 발효 전인 올해 초부터 미국에서 FTA 관련 마케팅을 실시했다. 수옵틱스는 FTA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해외 바이어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였다. 수출 물품 통관 관리를 위해 관세청 중소기업청 등에서 실시하는 교육과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의료기기 업체 나눔테크는 한·EU FTA로 관세 1.7%가 철폐되기 3개월 전부터 해외 전시회 등을 통해 잠재 바이어들에게 제품 테스트를 신청했다.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었다. 기산전자는 서울세관을 찾아 FTA 활용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받았다.

임원기/대전=임호범 기자 wonkis@hankyung.com